정주영의 선택과 향후 파장

31일 정주영 명예회장과 몽헌, 몽구 3부자의 경영일선 퇴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발표로 현대는 물론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현대의 이날 발표는 국내 재벌오너 체제 붕괴를 알리는 것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대기업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오너가 일일이 간섭해왔던 국내 대기업의 경영방식은 일대전환이 불가피해졌다.

◇현대의 진로

오너 경영체제 붕괴로 현대 계열사들은 새로운 경영환경에 놓였다. 일단 경영을 맡은 전문경영인의 입지가 앞으로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전문경영인들은 그동안 오너 눈치를 봐야 했으나 명목상이나마 경영간섭을 받지 않게 돼 더욱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쪽에서는 정씨 일가가 여전히 대주주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상장 현대 계열사에 대한 정씨 3부자의 총 지분은 8% 수준으로 개인 대주주로서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현대 계열사들은 또 그룹 자구책에 따른 자산매각 등으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전개하기 힘들 전망이다. 어느 계열사나 신규투자는 엄두를 내지 못할 상황이다.

계열사들은 경영 안정화 차원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해외 선진기업과의 합작과 전략적 제휴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 매각과 같이 해외업체에 대한 회사 매각도 앞으로 활발해질 전망이다.

◇전자계열사에 미칠 영향

현대전자는 전장사업(현대오토넷) 분리에 이어 모니터 사업 등을 분사할 계획인데 이번 발표를 계기로 이러한 경영합리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또 300㎜ 웨이퍼, 차세대 TFT LCD 생산라인 등 신규투자 일정을 전면 재조정해야 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한때 재투자도 검토했던 웨일스공장 매각작업과 함께 외국업체와 제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전자는 이사진에서 정몽헌 회장이 빠지게 돼 박종섭 사장 체제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정보기술의 독자경영도 확대될 전망이다. 그룹 계열사 출신이 아닌 표삼수 사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될 현대의 경영 구도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사는 그러나 관계사의 축소로 인한 영업상의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안정적인 시장인 관계사의 시스템 관리(SM) 부문 매출이 크게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정보기술은 그룹 전 계열사의 e비즈니스 사업을 총괄하는 데 주력해온 터라 사업수정도 불가피하게 됐다.

현대정보기술은 정몽헌 회장 지원으로 주요 계열사들의 e비즈니스 전략을 모아 종합적인 정리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신규 인터넷 사업을 추진해왔다.

여기에 현대정보기술은 외부매각 가능성까지 제기됨으로써 외부 SI사업의 추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번 발표에서 아예 매각대상 업체로 명시됨으로써 합작방식으로 매각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합작파트너로는 IMF에 접촉해왔던 유럽의 S사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S사가 현대엘리베이터를 인수할 경우 국내 업계의 3분의 2는 외국 자본이 차지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엘리베이터가 갑작스러운 매각으로 제값을 받지 못할 수 있으며 영구자석식 동기 전동기 등 국산화에도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신화수기자·주상돈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