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

여름과 함께 시작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첫번째 국내 개봉작.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는 로마시대로 돌아가 권력과 암투의 이면에 드리워진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제인 「글래디에이터」란 로마의 검투사란 뜻. 러셀 크로를 영웅으로 탄생시킨 이 영화는 SF 액션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었던 리들리 스콧의 장기가 빛을 발한다. 감독은 전투장면이나 격투장면에서 생생한 사실감을 재현하는 반면, 주인공의 심리묘사에서는 환상적인 묘사를 통해 자칫 고리타분해질 수 있는 시대극에 세련된 생기를 불어넣는다.

로마시대란 거대한 포장지에 쌓여진 위대한 영웅의 몰락과 그의 복수를 다루는 드라마 구조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와 다를 바 없지만 이야기 속에 담겨진 시대적인 재현과 스펙터클은 남자다움과 강인함에 대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할 만큼 격렬하고 잔인하게 초반을 압도하는 전투장면이나 「벤허」에 대한 오마주를 느끼게 하는 콜로세움의 격투기 장면은 「글래디에이터」의 하이라이트. 잔인한 폭력장면이 과다 노출되고 근친상간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에도 불구,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아 심의의 형평성에 대해 다소 논란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로마의 위대한 장군 막시무스는 게르마니아족과의 전투를 다시 한번 승리로 이끈다. 그를 총애하는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이 죽은 후 정치를 원로원에 맡기고 그 사이의 혼란을 막시무스에게 막아 줄 것을 부탁한다. 이를 알게 된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살해하고 막시무스와 그의 가족들을 죽일 것을 명령한다. 죽음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혼자 살아남게 된 막시무스는 노예상에게 팔려 모나코에서 검투사로 훈련을 받게 되고, 뛰어난 솜씨로 매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가자 인기가 날로 높아간다.

한편 코모두스는 로마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법으로 금지되었던 격투기를 부활하고 이 기회를 틈타 막시무스는 콜로세움에 서게 된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불에 타 죽은 아내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코모두스를 죽이려 하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한편 막시무스의 옛 애인이자 코모두스의 동생인 루실라는 다음 후계자인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걱정하며 코모두스의 곁을 지키지만 로마를 위해 막시무스를 돕기로 결심한다.

2시간 30여분으로 상영시간이 다소 길지만 「글래디에이터」는 영웅의 몰락을 얘기하는 전반부보다 영웅의 재기와 황실의 갈등을 다루는 후반부가 훨씬 극적이고 아기자기한 재미들로 꾸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