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가 컴퓨터 시대라면 2000년대는 통신과 디지털가전 시대」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컴퓨터 및 주변기기에서 점차 통신 및 디지털가전제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태어날 때부터 메인프레임 등 컴퓨터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일대 변혁을 예고하는 것으로 세계 메모리 반도체업체들은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PC시대는 가는가=지금까지 메모리반도체의 응용범위는 워크스테이션과 PC와 프린터 등 관련 주변기기 일변도였다.
그렇지만 디지털기술의 발전으로 그 응용범위가 21세기에는 휴대 통신단말기와 디지털TV 및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 디지털카메라 및 캠코더, 게임기 등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는 IMT2000과 디지털 방송이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자나 숫자, 정지 영상을 처리하던 컴퓨터와 달리 휴대 통신단말기와 디지털가전은 음성과 동영상 데이터를 처리한다. 이에 따라 이들 제품에 대한 대용량의 메모리 채택이 늘어나고 있으며 시장 또한 급격히 커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수요에서 이들 제품의 비중은 10% 미만이나 앞으로 2∼3년 안에 두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그렇다고 당장 PC가 메모리반도체 주력 시장의 자리를 잃는 것은 아니다. 고성능PC 등으로 대용량 메모리시장도 급격히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영향력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다양해지는 제품군=메모리반도체 수요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제품 군에도 점차 변화가 일고 있다.
먼저 두드러진 변화는 제품의 다양화다.
수요가 PC용으로 집중됐을 때에는 메모리용의 단순 D램으로도 충분했다. 그렇지만 PC의 고성능화와 기능 복합화, 다양한 디지털가전제품의 등장으로 D램은 SD램과 다이렉트램버스D램, 더블데이터레이트D램, 싱크링크D램 등으로 제품군이 다양해지고 있다.
또 휴대 단말기와 디지털가전제품용 메모리로 적합한 플래시메모리 시장은 해마다 두배 안팎의 고속 성장을 거듭해 주력 메모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반면 D램과 아울러 PC의 주력 메모리였던 S램은 그 기능을 D램과 플래시메모리에 빼앗기면서 PC 시장에서 휴대폰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또 메모리와 시스템 IC 사이에 가로놓여졌던 벽이 허물어지면서 메모리 혼재 IC 등 새로운 제품군이 등장하고 있다.
◇달라지는 사업 전략=제품군의 다양화는 국내외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사업 전략에도 상당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종전처럼 특정 제품의 생산만 고집하다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자칫 퇴출될 수 있는 위기에 놓였다. 이에 대한 반도체 업체들의 대응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
하나는 어떤 신제품이든 일단 시장에 참여하려는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삼성전자, 현대전자, NEC 등이 해당된다.
이들 업체는 위험도를 분산시킨다는 점에서는 유리하나 개발 및 설비투자의 부담이 큰 게 흠이다.
또 다른 움직임은 플래시메모리 등 시장전망이 확실한 제품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후지쯔 등 주로 D램 시장에서 탈락 위기에 놓인 일본업체들이 구사하는 이 전략은 시장 세분화 및 기술 통합의 시장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어려운 한계가 있다.
◇전망=메모리반도체 업체 경영자들은 수요처의 다양화로 의사 결정이 더욱 힘들어졌다.
제품의 특성상 호황과 불황이 극명하게 대조되며 투자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전보다 더욱 정확한 시장 예측력은 반도체 업체들에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또한 통신 및 디지털가전제품 수요의 급신장은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에 관련 시스템 IC에 대한 기술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동영상 처리에 대한 요구로 각광받는 D램 혼재 IC의 경우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시스템 IC에 대한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메모리반도체의 기술 개발에 치우친 국내 반도체업체로선 이러한 기술 환경의 변화가 적잖은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최근 컴퓨터 이외에 통신, 디지털가전으로 신규 영역을 넓혀가기 위해 관련 제품의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관련 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으나 일본 업체에 비해 뒤처진 상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메모리 혼재 IC의 경우 아직 공정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아 개별 칩으로 만들 때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어 당장 시장을 형성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메모리기술만 갖고서는 미래 반도체 시장에 대응하기 힘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