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가전 대공세>7회-에필로그

세계경제에 불어닥친 개방화 바람이 국내 가전 유통시장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고 있다.

국내 유통시장의 개방은 당장은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진 유통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과거 대만은 유통시장을 개방한 후 가전산업의 내수 기반을 몽땅 외국 업체들에 내줘야 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물론 중소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대만은 일찌기 가전산업보다는 컴퓨터와 주변기기 산업에 힘을 쏟아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우리나라와 경제여건이 사뭇 다르다.

하지만 대만과 달리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가전을 모태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가전의 생산 및 유통기반을 잃어버리게 될 경우 그 타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국내 가전 및 유통업체들이 외산 가전업체들의 대대적인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일본이 주축이 되고 있는 외산 가전업체들도 그동안 관세와 제도적인 장벽으로 인해 국내 시장을 제대로 공략할 수 없었지만 지난해 대부분의 장벽이 사라지고 국내업체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에 한국시장 진출을 보다 본격화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가전업계와 외국업체들은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할 상황에 부닥친 가운데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게 될 품목으로는 TV와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DVD플레이어 등 주로 영상관련 제품들이 꼽히고 있다.

이들 품목은 소니, 마쓰시타 등 일본 가전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어 국내 업체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실제로 백화점, 할인점에서 판매되는 일본 완전평면TV의 경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품절 사태를 빚는 등 이미 일정부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유통망을 둘러싼 국내업체들과 외산가전 업체들의 쟁탈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자사 대리점의 보호차원에서 양판점에 대한 제품판매를 자제해 왔던 가전업체들이 최근 은밀히 양판점을 돌며 자사제품 판매를 당부하는 등 유통망을 선점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외산 가전업체의 경우 대부분 유통망이 영세한 탓에 소비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양판점이나 할인점을 통한 판매에 매달리고 있다. 이는 엄청난 돈을 들여 대리점을 운영하는 것보다 기존 유통망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전자상거래도 외국업체에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국내업체들이 기존 오프라인 대리점을 거느리고 있는 반면 외산 가전업체들은 오프라인 유통의 부담이 없기 때문에 전자상거래분야에서는 외국 가전업체들의 사업전개가 다소 유리한 입장을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자상거래를 활용한 외국 가전업체의 공략과 국내 가전업체들의 대응 움직임이 향후 국내 가전유통시장의 판도변화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지난 74년부터 시행돼 온 수입선다변화제도는 국내 가전산업이 자립기반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보호막이 국내 가전업계가 기술개발과 서비스질 향상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게 한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애국심이나 반일감정에 호소하는 마케팅은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가전업계는 제품력과 서비스로 당당하게 외국 가전업체들에 맞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가전업계의 새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 가전시장에서 보다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