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R&D에서 슈퍼컴퓨팅의 역할」 좌담회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과학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에 발맞춰 전자신문사는 연구개발정보센터(KORDIC)와 공동으로 산·학·관 전문가를 초청, 「과학기술 R&D에서 슈퍼컴퓨팅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좌담회를 개최해 우리나라 과학과 산업기술 발전의 미래를 논의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슈퍼컴퓨터의 적절한 활용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며 특히 과학·산업 분야의 역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이날 좌담회의 주요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참석자=이정희 KORDIC 책임연구원(사회), 성기수 KORDIC 명예연구위원, 전무식 한림원 원장, 김정우 연세대 교수, 김삼묘 경북대 교수, 정성종 전북대 전자계산소장, 주상선 대우고등기술원 이사, 김재삼 포항공대 교수, 이상산 KORDIC 슈퍼컴퓨팅응용실장, 윤세준 과기부 과학기술정책실 과장

◆장소 : 공공기술연구회 대회의실

◆일시 : 6월 9일 공공기술연구회 대회의실

△사회 = 국가과학기술 전반에서 슈퍼컴퓨터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좌담회를 진행하기에 앞서 슈퍼컴퓨터의 발전과정과 중요성을 먼저 언급해야 할 같습니다.

△성기수 = 일반적으로 슈퍼컴퓨터는 당대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컴퓨터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터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됐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군사대국들은 수소·원자 폭탄 등의 개발과정에서 필요성을 느꼈고 이것이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급속히 향상시켰습니다. 이후 활용분야가 화학·물리·항공 등 기초과학분야로 확대됐고 지금은 과학기술 전분야에 필수적인 장비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88년 비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슈퍼컴퓨터가 들어왔습니다.

△사회 = 교육적인 측면에서 슈퍼컴퓨터의 활용도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정성종 = 우선 대학내 연구인력과 연구과제가 계속적으로 고도화·전문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자료를 신속·정확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가 꼭 필요합니다. 또 역설적으로 슈퍼컴퓨터 활용과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라도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도입해야 합니다.

△사회 =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의 주무부처로서 과학기술부의 슈퍼컴퓨터에 대한 인식 수준과 활용도에 대한 입장을 말씀해주십시오.

△윤세준 = 정부는 과학기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며 주요인프라로서 슈퍼컴퓨터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국민에게는 슈퍼컴퓨터 도입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도 고성능 슈퍼컴퓨터에 대한 인지도를 더욱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전무식 = 슈퍼컴퓨터와 관련해 생각할 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기초과학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는 계산기가 보편화하기 이전의 주판이라고나 할 정도로 수준 미달입니다. 개인용 컴퓨터도 2∼3년 지나면 고물취급을 받는데 첨단기술 개발의 토대가 되는 최신 슈퍼컴퓨터 2호기를 도입 7년째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과학기술 행정정책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기수 = 이웃 일본 정부는 슈퍼컴퓨터를 소위 「신 SOC 정비계획」에 포함해 도로·항만·철도 등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으로 여길 정도로 활용에 적극적입니다. 슈퍼컴퓨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국가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일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우리정부와는 커다란 인식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산 = 우리나라가 18개월마다 2배씩 성장하는 슈퍼컴퓨터의 발전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2호, 3호 등 숫자로 표기하면서 성능을 표기하는 것도 그러한 인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90년대초 도입한 2호기는 그 당시 세계 20위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500위 바깥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슈퍼컴퓨터에 대한 인식은 성능보다 도입 이후 번호로 구입할 정도로 낮은 수준입니다.

△사회 = 그럼 본격적으로 「과학기술 R&D 활동에서 슈퍼컴퓨팅의 역할」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정우 = 기상분야에서 슈퍼컴퓨터의 역할은 차세대기후시스템 모형개발, 과거 기후변화 재현 , 미래 기후변화 예측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차세대 기후 시스템 모형을 통한 기후변화의 영향력 평가를 위해서는 복잡하고도 주요한 다양한 기후영향 인자라든가 변수가 들어갑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4차원 자료를 통해 과거의 기후변화와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시뮬레이션해야 하지요. 불확실한 기후변화와 관련, 초기 기후변화 조건과 경계 조건의 효과를 완화하기 위해서 예측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같은 복합적인 계산을 통한 모델링에는 슈퍼컴퓨터의 역할과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일본은 차세대 지구기후 시스템 모형을 개발중이고 미국은 NCAR·NASA·NOAA 등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G7 과제」의 일환으로 연세대와 지구환경연구소와 서울대 대기환경연구소에서 슈퍼컴퓨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김재삼 = 물리·반도체 분야의 슈퍼컴퓨터 활용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은 맨해튼프로젝트 완성을 위해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성능을 향상해 슈퍼컴퓨터 수요를 높여왔습니다. 스위스 또한 가속기 실험실에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이용했고 국내에서는 반도체 분야에서 특히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향후 활용 분야는 태양의 내부구조를 밝혀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태양중성미자 연구와 초신성 등 천체 물리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용될 것입니다. 하지만 PC클러스터를 사용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분야도 있습니다.

△이상산 = 클러스팅 기술은 특정분야에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 맞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 분야에 적용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겁니다.

△주상선 = 자동차·조선 등 제조 분야 기업의 최대 관심사는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입니다. 최근에는 경쟁력 확보의 핵심이 이미 확보된 품질과 가격보다는 설계에서 출하까지의 기간을 최소화하는 데 있습니다. 가령 신차 개발기간은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4년 정도 걸렸으나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2년 만에 개발할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툴로서 컴퓨터지원생산설계 엔지니어링(CAD·CAM·CAE) 기술이 꼽히는데 특히 CAE 분야에서 슈퍼컴퓨터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입한 슈퍼컴퓨터 용량을 고려할 때 사용가능한 메시(Mesh)수가 수십만개에 불과해 기껏해야 시험 주도의 제품개발밖에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향후 고속슈퍼컴퓨터의 도입과 활용을 통한 자동차·조선 분야의 고속설계로 시장출하 시간을 단축하면서 경쟁력을 높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성종 = 컴퓨터 분야에서 중요한 것은 더욱 많은 사용자가 슈퍼컴퓨터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업무 추진중에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슈퍼컴퓨터의 활용방안에 대해 정책당국자에게 제언할 사항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십시오.

△성기수 = 슈퍼컴퓨터의 필요성·중요성에 대해 좌담회를 가질 정도까지 온 현실자체가 문제입니다. 최신 슈퍼컴퓨터를 도입하는 것은 단순히 컴퓨터 장비 하나를 들여오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의회에 출석해 슈퍼컴퓨터 도입과 관련된 예산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대통령이 지시한 과학기술예산 5조원 가운데 연간 500억원 정도를 슈퍼컴퓨터 개발에 투입해야 세계적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지속적으로 도입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수요가 무한대로 늘어날 21세기에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 보유, 활용 여부는 국가경쟁력 확보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국가 과학기술의 장래가 슈퍼컴퓨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삼묘 = 지금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게놈연구프로젝트, 생명공학, 유전공학 분야 등 생명체 관련 분야에서도 슈퍼컴퓨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 관계자도 이에 대해 충분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분야에서의 계속적인 지원이 요구됩니다.

△정성종 =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전문사용자를 양성하고 슈퍼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한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도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분야에서 슈퍼컴퓨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성능의 시스템을 초고속망으로 연결해 성능을 극대화해야 할 것입니다.

△주상선 = 기업의 슈퍼컴퓨터 활용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국내 여건상 50% 이상의 슈퍼컴퓨터 가동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은 10개 이하입니다. 대다수 기업은 필요성을 느껴도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미니슈퍼(Mini-Super), 또는 워크스테이션급 컴퓨터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공동 활용할 수 있는 공공 슈퍼컴퓨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응용기술 개발의 지원에도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정부가 산업계 슈퍼컴퓨팅 수요 중 일부를 감당하고, 산업계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무분별한 슈퍼컴퓨터 도입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무식 = 과학기술 정책입안자와 예산 집행자의 마인드가 근본적을 바뀌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고성능 슈퍼컴퓨터의 도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 문제입니다. 정부 관련 부처와의 효율적 의사소통을 기대합니다.

△사회 = 아무쪼록 이번 좌담회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장관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