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체 대북 투자 방향과 과제

전자업체들의 대북사업은 13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궤도에 진입할 전망이다.

민간 차원으로 전개됐던 남북 경제협력이 정상회담 이후 당국 차원의 협력으로 격상되면서 전자업체들의 대북 직접투자 길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들은 『섣부른 낙관은 곤란하나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반적인 대북 투자환경이 개선될 것이며 전자업체들의 투자열기 또한 한층 고조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주요 전자업체들이 단순 임가공에 머물렀던 대북사업을 직접투자 형태로 「업그레이드」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해준다.

◇북녘을 향하는 전자업체=지금까지 전자업체들은 대북사업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북 투자의 이점은 낮은 임금과 값싼 토지에 따른 낮은 제조원가인데 우회교역에 따른 물류비용 과다, 이중과세 등으로 인한 높은 거래비용이 그 이점을 상쇄했다. 또 투자보장 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국내 전자업체들은 대규모 투자를 아예 추진할 수 없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면 국내 전자업체들이 대북 직접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진다. 더욱이 전자업체들이 주로 진출했던 중국에 대한 투자 이점은 점차 사라지는 마당이다.

이와 관련,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당국과 최혜국 대우, 조세감면, 투자수익의 자유로운 송금 등을 담은 투자보장협정 체결을 추진중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같은 성과를 거둘지 미지수이나 성사만 되면 전자업체들의 투자는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삼성·LG 등 주요 대기업들은 이같은 관측을 바탕으로 전자부문의 직접투자 등 적극적인 대북 투자방안을 모색중이다.

전자업체들의 대북 투자규모와 범위는 날로 커지겠으나 당분간 노동 집약적인 저가형 전자제품에 대한 투자가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대북 투자의 이점은 낮은 인건비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투자 보장만 이뤄지면 전자업체들도 대규모 직접투자를 단행할 방침이며 생산제품과 종류 또한 한층 다양해질 전망이다.

초기에는 국내 반입 또는 제3국 수출을 위한 전자부품과 단순 전기전자제품에 대한 대북 투자가 활발할 것이며 점차 가전제품·전기제품·컴퓨터·소프트웨어(SW)·통신장비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 투자위험성이 큰 개별기업 투자 위주에서 투자부담을 줄이고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는 동반 진출이 점차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 전자부품 업체들은 최근 일부 대기업 주도로 추진하는 북한내 전자복합공단 조성사업에 관심을 내비치고 있다.

◇넘어야 할 산들=전자업체들의 대북사업은 투자보장 미비나 낮은 사회간접시설 말고도 극복해야 할 현안이 수두룩하다.

우선 판로가 없다. 북한에서 생산할 전자제품을 판매할 시장 역시 중국 등 일부 국가와 국내 저가시장에 국한됐다.

국내 전자업체의 주력시장인 미국은 테러국이라는 이유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는 일부 유럽연합(EU) 국가가 동조해 이들 국가로의 수출 길은 사실상 막혀 있다. 미국은 외산 전자제품에 대해 1.2% 미만의 관세를 적용하나 북한산 제품에 대해서는 무려 35% 안팎의 관세를 적용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북한에 진출하는 전자업체들은 따라서 초기 수출 시장으로 구 사회주의국가와 일부 선진국 등지를 집중 개척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구사회주의국가의 경우 북한과의 오랜 선린 관계로 교역 길이 트여 있으며 캐나다와 일부 EU국가는 쿼터제이기는 하나 북한산 제품의 유입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국내 전자업체들이 이들 지역에 현지생산기지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북한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대북 직접 진출 초기에는 무리한 품목 확대보다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원가 절감에 집중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낮은 인건비만 쫓아갔다가 낮은 생산성으로 고생했던 대 동남아 투자의 잘못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제도 개선과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자제품과 관련 장비는 군사적 전용의 우려 때문에 대북 반출 품목이 많은데 구체적인 용도 판정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또 정부의 행정서비스도 엉망이다. 한 전자업체의 임원은 『북한내 임가공 사업도 정부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추진했다』면서 『투자보장협정 체결 이전에 대북 사업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므로 투자 활성화 차원에서도 북한에 직접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뭔가 혜택을 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북한내 전자공단 입주 기업에 대해 동포우대 조항을 신설하거나 현행 외국인투자 관련 법을 정비해 투자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업계 관계자들은 『북한 당국도 단순 소비재보다는 전자제품과 같은 연관 산업 파급효과가 큰 분야에서의 협력을 바라는 상황에서 전자 업체들의 적극적인 대북 진출은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산업을 육성하려는 북한 당국과 북한의 질높은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국내 전자업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전자산업은 정상회담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린 남북경제 교류의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