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논설위원 jspark@etnews.co.kr
공짜를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서양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갖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반면 우리는 품앗이 문화가 보편화해 대가없이 무엇을 얻는데도 별 거부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공것 바라기는 무당의 서방」이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공것이라면 양잿물도 먹는다」고 했을까. 공짜문화는 좋고 나쁨을 떠나 우리 민족의 오랜 속성 가운데 하나다.
이달부터 보조금 지급이 중단된 공짜 휴대폰도 따지고 보면 그런 속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한 사람이라도 가입자를 더 늘리기 위해 보조금 지급이라는 형태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었고 그 결과 이동전화 가입자들은 비싼 이동전화 달말기를 거의 공짜와 다름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공짜의 대가가 무엇인지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은 듯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공짜문화는 각계로 더욱 퍼지고 있는 듯하다. 광고를 보면 돈을 받고 복권을 얻고 또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국제전화까지 무료로 쓸 수 있으며 무료 공중전화도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설치비가 드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도 거의 공짜와 다름없는 상품이 등장했다. 어찌보면 공짜 휴대폰과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일부 사업자들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서 펼치는 마케팅 때문이다.
그런데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만은 공짜가 부당한 것 같다. 공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통상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한 가구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거의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로통신과 같은 기간사업자는 올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에 투자하는 금액이 2조원을 웃돌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기껏 한달에 3만∼4만원의 사용료를 받고 있는데 그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4∼5년이 걸린다. 그런데도 일부는 거의 공짜 수준의 사용료를 받고 있는데 앞으로 이 사업자들은 어떻게 투자비를 회수할지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동전화를 공짜로 주는 것과는 경우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이동전화는 일정한 시설만 갖춰 놓으면 가입자가 증가하더라도 추가로 비용이 크게 들어가지 않지만 초고속인터넷은 가입자가 추가되는 만큼 설치비가 더 들어가게 마련이다.
세계 선진국중 우리처럼 초고속인터넷 사용료가 싼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 한 달 사용료가 우리보다 4∼5배 가량 비싸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유치가 올해부터 내년까지가 절호의 기회라고는 하나 그렇게 싼 값의 가격을 책정해 서비스하는 것은 앞으로 몇년 내에 대부분의 사업자들이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해 부실로 갈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심히 염려스런 일이다. 우선 곶감이 달다하여 사용자 입장에서 당장은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의 정보통신산업 체질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소비자들의 부담이라는 반대급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가입자 유치에만 힘을 쏟다보니 서비스가 부실하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은 게 사실이다. 제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는 불평불만이 주류를 이루고 심지어 서비스가 중간에 중단되는 일도 적지 않다. 일부는 가입자 유치를 위해 뒷감당을 하지 못할 정도의 무리한 판촉활동을 벌여 나중에 원성을 사는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년 이후다. 가입자 유치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던 사업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초고속인터넷 수요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때 가서 이제까지 비싼 서비스를 공짜와 다름없이 제공했으니 사용자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가입비나 서비스 요금을 무턱대고 대폭 올릴 것인가.
이 시점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업자들의 신중하고도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