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휴렛패커드(HP)의 회장 겸 CEO이자 미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으로 꼽히고 있는 칼리 피오리나(46)가 조용히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가 하루 만에 바로 떠났다. 피오리나는 13일 컨설팅 부문 총괄부사장인 버나드 귀통을 대동하고 왔다가 14일 바로 출국했다.
미국 HP의 CEO로 전격 발탁돼 세인들을 놀라게 했던 피오리나의 이번 방문목적에 관련업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HP 관계자들은 『아시아 지역 주요 해외지사 순회의 일환으로 들른 의례적인 방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방한 일정도 1박2일로 짧게 잡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한국HP의 설명에도 불구, 칼리 피오리나의 이번 방한에 대한 컴퓨터업체들의 의견은 다르다. 요즘 HP의 변혁을 주도하고 있는 피오리나 CEO가 한국HP 사업과 관련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갔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왜냐하면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의 컴퓨터 수요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특히 한국의 경우 IMT2000 서비스 사업자 선정, 금융권 구조조정 등 중대형컴퓨터 관련 주요 빅딜에 임박한 것에 비추어볼 때 피오리나 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한국HP 최고경영진에 이에 대한 대응전략 마련하도록 독려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특히 한국HP가 국내 중대형컴퓨터 부문 리딩 컴퍼니로 도약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e서비스」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어 이에 대한 피오리나의 입장도 전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HP는 지난해부터 금융·통신·제조·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중대형컴퓨터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5000억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 데이콤·SK그룹·하나로통신·삼성그룹 일부 계열사 등을 중심으로 전산투자비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에 방한한 피오리나 회장은 올해 하반기부터 잇따라 발생한 중대형컴퓨터 관련 빅딜에서 과감한 금융지원을 실시하도록 한국HP측에 주문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만일 이같은 관측이 사실일 경우 지난 몇년 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신통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한국HP의 「메인프레임 대체 전략(MFA)」이 다시 재가동되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국내 중대형컴퓨터 시장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미 그 단초는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HP는 최근 SK증권에 계정계 시스템용으로 대형 유닉스서버인 「V2600」 2대를 공급하는 개가를 올렸다. 과거 이 시스템은 IMB의 메인프레임으로 운영돼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즉 한국HP는 SK증권의 메인프레임을 자사 대형 유닉스서버로 대체하는 「윈백」을 실시, 파인내싱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실시간 용량 증설 프로그램(iCOD)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이 실시간 용량증설 프로그램은 일종의 외상 판매정책으로 처음에는 고객이 필요한 컴퓨팅 능력에 맞게 서버를 공급하돼 급격한 전산용량 증대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위해 외상으로 CPU·저장장치 등을 여벌로 공급하는 전략이다. 이럴 경우 고객은 여벌 시스템에 대한 금융 부담을 지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HP가 대규모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파이낸싱 전략을 구사할 경우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다른 중대형컴퓨터 업체들은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