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거품론으로 일반 벤처캐피털업계의 벤처투자가 주춤한 틈을 타 벤처기업들이 은행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자기자본이나 투자조합 등 한정된 재원을 운용하는 벤처캐피털업체들이 주식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 투자를 자제하는 데 반해 상대적으로 자금동원 능력이 막강한 은행들의 벤처열기는 여전히 뜨겁기 때문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두달새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은행문을 두드리는 벤처기업들이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일부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우량 은행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며 적극적인 투자공세를 취해 일부 우량 벤처기업까지 은행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까지 1주일에 2건 정도의 투자를 보였던 산업은행 벤처팀의 경우 심사청구가 2∼3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달 중순부터 투자확정기업 수도 2배 정도 증가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코스닥 붕괴 이전에 투자받기가 좀 더 쉬운 다른 금융기관을 찾았던 벤처기업들의 발길이 최근들어 부쩍 잦아졌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은행을 찾는 벤처기업들 대부분이 한두차례 펀딩을 거친 코스닥 등록 바로 직전의 기업들이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초기 유망 벤처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나은행도 투자요청 기업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하나은행의 관계자는 『각 지점에 투자를 요청하는 기업들이 최근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며 『특히 업체 수도 늘었지만 유망기업이 눈에 자주 띄는 등 질적인 면에서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코스닥 침체 및 조정기가 장기화되면서 투자회수에 불안을 느낀 창투사 등 벤처캐피털업체들이 신규투자보다는 「총알」(자금) 확보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 여유자금이 넉넉하지 않은데다 전반적인 벤처열기가 식으면서 신규 자금조달(펀드레이징)도 예전같지 않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은 『벤처거품론이 확산되면서 창투사들이 신규투자보다는 투자기업에 대한 사후관리에 주력하고 있고 「따라하기식」 투자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략적인 투자로 정책을 선회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은행들은 전문 벤처투자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다』고 지적했다.
벤처기업들이 최근 상대적으로 은행을 더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프리미엄을 좀 낮추더라도 이왕이면 든든한 후원자를 얻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즉 지속적으로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하는 벤처비즈니스의 특성상 단발성인 투자 이외에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든든한 기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벤처기업의 한 관계자는 『투자조건이 다소 불리하더라도 은행의 막강한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점에 매력을 느낀 벤처기업들이 은행을 주로 찾게 된다』며 『최근의 코스닥 및 벤처투자 조정기가 장기화될 경우 은행이 벤처자금 공급원으로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