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벤처기업의 대북 경제협력...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최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최고의 화제는 남북정상회담과 경제교류다. 중동특수를 능가하는 대북경협 특수가 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씀처럼 기업경영을 하는 사람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벤처기업들 역시 어떤 부문에서 어떻게 북한과 교류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 진출했거나 진출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업종은 건설·도로·항만 등의 사회간접자본 구축이나 비료·가전제품 등의 생필품 양산, 현대와 같은 관광산업 공동추진 등으로 요약된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보통신 벤처기업이나 인터넷기업들이 북한에 효과적으로 진출한 사례는 많지 않은 걸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들어 벤처기업들이 북한과 어떤 분야에서 경제협력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우리가 북한과 경제적으로 교류하는 데 있어 북한을 어떤 식으로 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번째로 북한을 지원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다.

경제협력의 초기 단계에서 북한은 현실적으로 지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해 주고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을 보장하는 활동을 통해 최소한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영위될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춰주는 게 불가피할 것이다. 이 문제는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교류 및 체제의 이질성 극복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두번째로 북한을 시장으로 보는 시각이다.

초기 교류단계에서 경제적인 지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에야 북한이 단순한 지원대상이 아니라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조금씩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도 모든 산업분야에서 동시에 열리기는 힘들 것 같고 마치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바뀌면서 소비시장이 변화하는 것과 같은 형태로 시장이 형성될 것 같다(물론 그 속도야 훨씬 빠르겠지만).

북한의 체제문제와 주민들의 절대적인 생활수준의 문제는 대북경협사업의 방향성을 가늠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을 주로 하는 벤처기업들이 북한에 서둘러서 진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이고 가능한 일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유선전화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IMT2000단말기를 만들어서 바로 북한에 공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남한의 벤처기업이 인터넷을 깔아서 전주민이 실시간으로, 그것도 검열없이 채팅을 한다면 그것을 북한 당국이 용인할리도 만무하다. 결국 북한을 시장으로 보는 단계에서의 초기 접근은 생필품 위주, 오프라인기업 위주, 공공사업 위주(예를 들어 정부 및 은행전산망 구축 등)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그리고 인터넷과 정보통신 위주의 벤처기업들은 그 다음 단계에서(물론 이렇게 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솔직히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다) 체제의 변화와 발맞추어 서서히 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세번째로 북한을 개발과 생산의 파트너로 보고 협력을 하는 시각이다.

사실 벤처기업협회장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는 부분이다. 북한의 군사기술에서 파생한 수학·핵물리학·생명공학 등의 일부 기초학문과 애니메이션·항공우주산업 등의 기술분야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례로 북한은 구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91년까지 1년에 수천명의 유학생을 러시아·폴란드·동독·체코 등으로 유학을 보냈고 이들 대학의 각종 성적 평가에서 매년 1위를 차지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북한의 근로자들이 강한 정신력과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연구개발을 생명으로 하는 남한의 벤처기업에는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북한에는 9만여명의 정보통신 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한다. 이들의 평균임금은 남한에 비해 100분의 1 내지 1000분의 1에 해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업체가 많지 않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실정이라 한다.

또한 북한을 생산기지로 활용한다면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개발과 생산의 협력에도 여전히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법적·제도적인 장치를 우선적으로 정비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유재산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벤처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체제변화와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지, 벤처기업의 필수 생존요소인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북한 기업에 흡수시킬 것인지는 훨씬 중요한 사항이다.

북한과의 경협문제는 국가적으로나 개별 벤처기업이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다. 또한 많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만큼 신중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 벤처기업인들이 어떻게 청사진을 잘 그려내느냐에 따라 협력의 속도와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이 결정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임인 만큼 벤처기업답게 더 창의적이고 유연한 구상이 나와야 한다. 소를 끌고 가서 화해 분위기를 만들고 금강산을 개발해서 주민왕래를 실현한 것처럼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이 벤처기업인들에게서도 나와서 새로운 민족의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데 일조하는 것이 벤처기업인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시대적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