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배순훈 밀레니엄엔젤클럽 회장

<주요약력>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미 MIT 공학박사 △KAIST 교수 △스탠퍼드대 객원연구원 △대우전자 사장·회장 △정보통신부 장관 △현 KAIST 초빙교수 △현 리눅스원 회장 △현 (주)미래온라인 회장

화려한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면 남자의 변신도 당연히 무죄다. 대기업그룹사 회장에서 정보통신부 장관, 그리고 대학교수에서 벤처전도사.

20세기를 가장 바쁘게 살았던 배순훈 밀레니엄엔젤클럽 회장(58)이 화려한 노년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장관시절 「평소 소신대로」 심지를 세우다 물러났던 배 회장이 벤처전도사이자 사업가로 황혼을 불태우고 있다.

대기업에 몸담았던 그가 벤처전도사로 나선 건 무슨 까닭일까.

배 회장은 이같은 변신에 대해 『벤처기업은 성장의 몫을 모두가 나눠 갖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순훈 회장의 주 근무처는 KAIST 테크노대학원 초빙교수연구실. 벤처전도사로 나섰지만 그가 평소 그리던 대학 연구실이다.

배 회장이 맡고 있는 대외직함은 전자신문사와 산기협이 공동주관하는 밀레니엄엔젤클럽 회장. 최근에는 리눅스원 회장, (주)미래온라인회장 등 벤처기업의 현장을 뛰며 벤처기업을 도우는 일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특히 KAIST 초빙교수로 있는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 동료교수들과 한 벤처기업에 엔젤로 참여해 17배의 투자이익을 올리는 등 현장 실무면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배 회장은 벤처기업 지원 외에도 이미 미래온라인 출범에 맞춰 자본금의 30%를 직접투자, 벤처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런 그를 두고 얼마전 모 언론사 사장공모에 편집국기자들이 하나같이 강력히 추천해 사장후보에까지 올랐으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며 완곡히 거절했다고 한다.

『후학들을 키우고 국가경쟁력을 책임질 벤처기업을 도와주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는 이미 83년 스탠퍼드대에서 교환교수로 있을 때 일찌감치 엔젤, 벤처조성, 투자기법 등 동료교수인 메디크 박사와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100명을 대상으로 직접 인터뷰를 실시하는 등 벤처연구에 몰두했었다.

대그룹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잔뼈가 굵은 배 회장이지만 실은 MIT 공학박사 출신으로 대학강단에 서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그를 길러낸 미국인 지도교수는 샌님 같은 그를 아끼는 마음에 세상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산업체 근무를 권유했다.

그래서 당시 정근모 장관의 손에 이끌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첫발을 들여 놓았을 때에도 학생들과 함께 엄청난 논문을 쓰기보다는 모심는 기계, 온돌 등 농촌현장에서 쓸모있는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이때부터 시작된 경험이 후에 자신을 스타로 키워준 「탱크주의」를 탄생시킨 배경이라고 털어놨다.

그가 29세가 채 못돼 처음 배출한 제자들이 그보다 한두 살 어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오길록 박사, 서울대 박성준·강신형·최용선 교수 등이다. 당사자들로서야 억울하지만 이들은 배 회장을 스승으로 깍듯이 모신다.

산업현장을 강조하던 그에게 당시 KAIST측이 준 선물은 논문 부족으로 부교수 승진대상에서 탈락시킨 게 전부다.

『하도 어이가 없어 한꺼번에 10편의 논문을 썼어요. 논문이라는 건 그야말로 실용성보다는 이론에 근거한 페이퍼 아닙니까.』

현장주의를 강조하던 그와는 한마디로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평가방식이었다는 것.

그런 일이 계기가 돼 대우그룹에서 20여년간 일했다.

앞서가는 그의 생각에 그를 아끼던 김우중 회장조차 수틀리면 그를 배 박사라고 불렀다.

배 회장은 박사라는 의미가 진정한 의미보다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빗대서 한 얘기라고 덧붙였다.

『벤처기업의 육성이야말로 경제활성화를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강조한 그는 『벤처가 갖고 있는 창의력을 제대로 이끌어내야 국력이 증진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20여년간 재벌 조직에 몸담았던 그의 생각이 바뀐 걸까.

배 회장은 단연코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재벌조직으로서는 창의력 있는 인재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고 자유경제체제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재벌체제가 맞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는 최근 정부의 재벌개혁조치에 대해 『재벌들이 우리경제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주고 사회가 그들이 명예롭게 물러나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하고 『재벌과 벤처기업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이해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 회장은 『성공한 벤처기업을 포함해 대표적인 기술기업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출연연 및 기업연구소 연구원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 밀레니엄엔젤클럽이야말로 벤처기업 육성을 통해 경제활성화에 기여해 나가는 데 적임자』라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지론대로라면 앞으로 재벌 2세들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나 새롬기술 등 벤처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가가 배출될 것을 기대해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배 회장은 최근 교수나 연구원 창업 붐에 대해 『학문적으로 박사라 해도 현장감각을 갖지 않으면 벤처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최고상품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인터넷기업의 과제는 무엇보다도 거품보다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진단한 그는 『인터넷 확산으로 나타나는 정보의 빈부격차 등의 부작용은 사소한 문제로 고쳐가면 된다』며 『정보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멈춰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배 회장은 『정보통신분야의 대북경협은 양측 모두에게 일반적인 경협관행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남북한 소프트웨어산업 협력의 경우 언어와 표준만 통일하면 되는 만큼 직접적인 왕래가 없어도 가장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분야』라고 지적했다.

배 회장은 『북한에서 만들어진 바둑 소프트웨어가 정식 왕래가 없는 일본에서 인기를 끈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볼 때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민족경제간 균등발전을 위해서는 기술자교육에 선행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있을 개각설과 관련해 『국가 경영은 명예를 갖고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며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벤처기업의 창업보육단계부터 지원하는 컨설팅회사와도 같이 일할 생각이다.

배순훈 회장. 또다른 그의 변신은 무죄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