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히면 돌아가라.」
올해 소형가전 업계에 부여된 또 하나의 대명제는 「수출선 확보」다. 국내 시장개척의 어려움에 부딪힌 업계가 돌아가는 길로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국경을 넘는 일. 국내 시장의 협소함에 따른 고육지책인 셈이다.
소형가전 업계가 일견 국내 시장 개척보다 곱절은 어려울 듯한 수출에 이처럼 힘을 쏟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발력은 달리고 품목의 다양화는 더딘데다 브랜드 인지도까지 바닥인 상태에서 중소업체가 국내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중국과 동남아산 저가 제품이 물밀 듯 밀려드는 것도 이들을 밖으로 내모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지난달 한국무역협회가 밝힌 「2000년 1·4분기 소형가전 제품 대중국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올 1·4분기에 토스터와 헤어드라이어가 각각 143만5000달러, 111만9000달러 어치씩 수입됐고 진공청소기 수입액도 95만9000달러로 100만 달러대를 육박하고 있다.
또 면도기와 커피메이커도 각각 70만5000달러와 68만1000달러 어치씩 수입되는 등 중국산 소형가전 제품의 국내 시장으로의 유입은 파죽지세의 형국이다.
더구나 중국산 제품이 워낙 저가에 유통되다 보니 가격 또한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더구나 기술도 품질도 가격도 고만고만한 수준인 국내 업체들까지 경쟁대열에 나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매출확대가 지상과제인 중견급 업체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오성사·파세코·우림전자·재우 등을 비롯해 마마·성광전자·대웅전기산업 등 전기압력밥솥 업체들까지 수출에 상당한 비중을 두며 해외 거래선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오성사는 올해 전체 매출의 30% 가량을 수출에서 올릴 계획이다. 특히 오성사는 하반기부터 일본·유럽지역 소형가전 업체가 생산뿐만 아니라 신규 아이템 개발까지 모두 아웃소싱하려는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이들 해외기업을 중심으로 OEM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오성사는 올해 선풍기 15만6000여대, 가습기 13만대, 살균물수건기 3000대, 제빵기 9만대 등을 일본·유럽·남미·미국·중국 등지에 수출할 예정이다.
제빵기와 선풍기 및 면도기 등 다양한 소형가전 제품을 생산중인 우림전자는 수출에 사활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림전자는 훈제기·제빵기·주서·복합 커피메이커 등을 미국과 일본의 유명 소형가전 브랜드에 수출할 예정. 우림전자는 지난해 소형가전 업계로서는 드문 260억원의 수출규모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에도 국내 판매법인 카이젤의 올 내수시장 목표 200억원을 2배나 상회하는 400억원의 수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이밖에 파세코는 전기점화식 석유히터로 전세계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기염을 토하며 올해 3000만 달러의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부방테크론·대웅전기산업·재우·성광전자 등은 전기밥솥·압력솥 등의 동남아 등지 수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소형가전 업계의 해외수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출선 확보가 자체 브랜드를 통한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의 성격보다는 해외 업체 브랜드에 기댄 납품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대상이 국외 업체로 바뀐 것 뿐이지 내용은 국내 대기업 OEM이나 마찬가지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추진되는 해외 업체 OEM은 단순 납품이 아니라 개발과 생산을 모두 관장하는 것으로 신제품 개발 노하우가 축적되는 장점이 있다』며 『해외가전업체와의 협력 확대를 통해 해외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한 후 자체브랜드 수출을 점차 늘려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수출은 이제 중견급 소형가전 업계에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