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한국을 방문한 퀄컴의 루이스 루핀(Louis M Lupin) 수석 부사장은 국내 언론으로부터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기술 표준을 둘러싸고 퀄컴으로 대변되는 동기식과 에릭슨 등 비동기식 기업들이 서로 한국시장을 잡기 위해 로열티 인하 경쟁을 펼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의 방한은 언론에는 더할 수 없는 「확인」기회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루핀 부사장의 기자간담회에서도 자연히 「로열티문제」에 질문이 집중됐으며 그의 답변은 명쾌했다. 『한국과 퀄컴은 상호이익을 주는 동반자이며 한국기업들에 대한 CDMA로열티 최혜국 대우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그가 말하는 최혜국 대우 원칙이란 IMT2000에서도 로열티를 올리지 않고 현 2세대 수준으로 「동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의 해석이 그렇다.
사실 국내업계는 퀄컴이 중국시장 문을 두드리면서 약 5∼6%, 평균 5.25%로 책정된 CDMA 로열티를 다소 인하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 희망은 『라이선스를 추가비용 없이 제공한다』는 루핀 부사장의 한 마디에 물거품이 됐다.
게다가 현재 진행중인 퀄컴과 중국의 로열티 협상 결과 한국의 조건 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면 이를 한국에 적용해주겠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이어져 국내업계를 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루핀 부사장은 한 술 더 떴다. 『에릭슨, 노키아, 모토로라 등 비동기방식 업체들의 로열티는 최소 27∼30%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상대적으로 퀄컴의 로열티가 훨씬 저렴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퀄컴과 우리나라 이동전화업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국이 CDMA를 단일 국가표준으로 제정하고 세계 최초의 상용화 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 퀄컴은 CDMA기술을 갖고 있는 자산규모 50만달러의 이름 없는 소기업이었다.
그런 퀄컴이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 IT시장의 거인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선택」 때문이었다. 한국은 퀄컴 신화의 「숙주」였다. 우리도 알고 퀄컴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년간 퀄컴에는 「한국업체들에 꼬박꼬박 로열티만 챙겨 제 배만 불리울 뿐 진짜 한국업체를 동반자로 생각하는지 의심스럽다」는 화살이 따라다녔다. 한국에서의 정서적 거부감이요 비난이다.
IMT2000을 앞 둔 이번만큼은 퀄컴의 자세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국내업계는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한 숨만 내쉬고 있다. 퀄컴에는 21세기에도 한국이 여전히 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