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만의 남북정상회담은 7000만 한민족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준 역사적인 사건이다. 본지는 북한출신 기업인으로 대통령 특별 수행단에 포함돼 역사적인 사건 현장에 자리를 같이했던 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의 방북기를 긴급 입수, 감격과 눈물로 보낸 3일을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2000년 6월 13일. 내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통령 특별수행단으로 선정돼 그렇게 기다렸던 13일은 부풀은 내 마음만큼 이나 날씨도 하늘도 그렇게 맑고 높았다. 그런 하늘을 가르며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보다 한발 앞서 평양으로 출발했다. 평양을 비행기로 직접 가다니. 꿈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행기는 휴전선을 바로 넘지 않고 중국 대련으로 가는 항로를 탔다. 50여년 동안 막혀있던 장벽을 하늘에서조차 쉽게 허락하고 싶지 않았던 탓일까. 비행기는 휴전선을 우회하고서야 비로소 백령도 상공으로 넘어 북한 땅에 들어섰다.
그 순간 문득 고향에 대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물장구를 치며 남대천 풍경이며 사촌 누이와 함께 산소가는 길에서 밤을 주어 까먹던 일들... 가슴 속에서 뭔가 형언치 못할 감동이 솟구쳐 올라왔다.
지난해 금강산에 다녀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 느껴지는 기분은 각별했다. 금강산에 갈 때는 단지 북한땅에 가본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조금이나마 고향을 지척에서나마 느껴 보자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만 이번에는 출발하기 전에 북에 있는 사촌 여동생 혜주를 찾았다고 미리 연락을 받은 터라 흥분과 기대가 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고향을 떠난 지 50여년만에 사촌 여동생과 만나 고향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애에서는 결코 오지 않을 일이라고 단정해 버렸던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북에는 큰아버님과 큰어머님, 사촌 형님과 누이 등 4명의 사촌형제가 남아있었지만 그 동안 생사조차 모르고 지냈다.
나는 14살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님과 함께 서울로 나왔다. 내 고향 북청 사람들은 교육열이 남달리 강했다. 일제시대때 일본 유학생 중 절반 이상이 북청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아버님도 나는 서울에 나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계신 분이었고 나는 그렇게 아버님의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나왔다. 무려 53년 전의 일이다. 어머님은 이듬해 동생과 함께 내려오셨다. 하지만 장손인 큰아버님은 고향을 지키셨다.
김 대통령보다 일찍 평양에 도착한 우리는 환영행사도 멀리 떨어져 구경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방송이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조차 알 길이 없었다. 특히 우리들 사이에서는 이번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북한 방송에 나올 것인지에 대해 잠시 의견이 분분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주암산 초대소에 들어가 TV를 켜보고 나서야 북한 방송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측의 환대는 우리 특별 수행원들에게도 정말 대단했다. 무려 60만명에 달하는 평양 시민들의 환영행사도 엄청났지만 이날 점심때부터 대접받은 음식도 그 동안에는 먹어보지 못했던 최고급 요리들이었다.
남과 북은 역시 한민족이라는 생각과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결코 우리만큼이나 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김영남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주최하는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환영만찬은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됐다. 여기서 우리는 북측 인사들과 섞여 앉아 북측이 마련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우리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환영만찬을 마치고 숙소인 주암산 초대소에 여장을 풀었다. 주암산 초대소는 1958년에 건설된 건물이라고 했는데 정말 멋있는 곳이었다. 자주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귀빈 접대용으로 사용하는 듯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에서 함께 묵은 우리 20여명의 특별수행원들은 이날 주암산 초대소에 함께 묵은 것을 기념해 주암계를 조직하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서자 김재철 무역협회 회장이 「내방에서 TV를 함께 보자」고 제안해 같이 들어가 TV를 봤다. 내가 방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엔지니어 출신답게 방에 설치돼 있는 TV와 에어컨이 어떤 제품인지 또 성능은 어떤지부터 살펴보는 일이었다. TV는 어떤 제품인지 알기가 어려웠고 에어컨은 미국 GE사가 만든 60년대식 창문형 에어컨이었다.
TV를 켜자 오전에 있었던 환영행사 장면이 그대로 나왔다. 아 이거 진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측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북한 방송에서 이처럼 남북정상회담을 그대로 방영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만해도 이번 정상회담을 대하는 북측의 태도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입장이었다. 보도도 제대로 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TV를 보고나자 이 같은 선입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번에는 분명 뭔가가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찬장에서 김 대통령으로부터 내일 오후 4시에 고려호텔에서 사촌 여동생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 특별 수행원으로서 방북길에 오르기 전에 사촌 형제들과 집사람의 남동생 등 4명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을 했다.
앞서 말했듯이 출발 전 사촌 여동생을 찾아놨다는 연락까지 받은 터라 막연한 기대는 했지만 실제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는데 김대통령으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직접 듣고난 후부터는 설레는 감정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빡빡한 일정을 위해 잠을 청하기는 했지만 내일이면 사촌 여동생을 만나 북에 남아있는 친지들과 고향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정말 꿈만같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