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공식면담을 하던 14일 오전 우리(특별수행원들)는 인민대학습당과 조선콤퓨터센터를 방문해 그들의 시설을 살펴보며 소일했다.
그러나 내 머리에는 오후로 예정된 사촌여동생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설레는 가슴을 추스리기가 힘든 상태였다.
인민대학습당은 북한의 중앙도서관 겸 사회교육시설로 직장인들을 위한 평생교육의 장이다. 어학시설과 PC교육장·수예실·음악교육실 등을 둘러보았는데 그 규모나 시설이 남한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무심코 안내원에게 『인민대학습당에 전시된 그림을 살 수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수채화는 40달러이고 유화는 100달러』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처음에는 인민대학습당 내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모두 전시품인 줄만 알았지 파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더구나 너무 빡빡한 일정 때문에 따로 쇼핑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던 상황이라 학습당 내에서 뭔가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나는 집사람이 좋아할 만한 풍경화를 한 점 골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사들고나니 가슴이 뿌듯했다. 우리는 나중에 30분만이라도 쇼핑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보기도 했지만 실제로 평양에서 선물을 사들고 들어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오후 4시로 약속됐던 사촌여동생과의 만남이 경제분과회 시간과 겹쳐 뒤로 미뤄져 상봉이 과연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인민대학습당에 이어 예정된 조선콤퓨터센터 방문시간이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다. 조선콤퓨터센터에서는 게임·인공지능·음악·전자사전·토지정리 등 각 분야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현황을 살펴봤는데 그 수준이 놀라울 정도였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측과 중국 베이징에서 관련분야 협력을 위한 공동진출에 합의한 적이 있는 업체다.
오후에는 인민문화궁전에서 북측 경제관련 인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우리측에서는 김재철 무역협회 회장과 이원호 중소기업협동중앙회 부회장,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비롯해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장치혁 고합 회장 등 10명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회장을 비롯해 박동근 조국통일연구원 참사, 정명선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 백세윤 조선컴퓨터회사 총사장, 조현주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연구원 등이 6명의 경제관련 인사들이 나왔다.
북측 대표인 정운업 회장이 인사말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단체의 만남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경제단체 대표 및 기업대표의 더 많은 접촉을 통해 교류를 확대해 나가고 싶다』며 우리측에 교류확대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얘기해달라고 했다.
이에 우리측에서도 『남북 경제협력 공동위를 조속히 가동해 이중과세방지협정, 투자보장협정 등 본격적인 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적 보장장치를 마련하자』며 『전경련과 무역협회·중기협·대기업 등 모두 함께 남북경협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테니 북측에서도 창구를 일원화해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전경련 남북경협위 회장을 맡고 있는 장치혁 고합 회장은 『정상회담 이후에 이북출신 기업인들의 고향에 대한 투자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며 이북출신 기업인들로 구성된 고향 투자단 얘기를 꺼냈다.
남북경협위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나도 『고향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며 『실향민 1세가 살아있을 때 협력해 우리가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간담회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고 북측 인사들도 우리 얘기를 성의를 가지고 경청했다. 이날 분위기로만 보아서는 전체적인 경협문제는 물론이고 생전에 내 고향 북청에 보일러 및 가스레인지 공장을 건설하고 싶다던 소원이 금방이라도 이루어질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이어 밤 8시부터는 평양시내에 있는 목란관에서 김 대통령이 주최하는 답례만찬이 있었다. 이 만찬은 우리쪽에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음식은 물론 수저까지도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무궁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만찬장에서 김 대통령은 수행원들과 일일이 건배를 하며 노고를 치하했는데 나한테는 특별히 가족을 만났는지 여부를 물어보며 빨리 만나보라는 배려를 잊지 않으셨다. 가슴이 찡해왔다. 이산가족 만남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김 대통령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때는 8·15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얘기가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