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제제조치 완화, 임가공 무역 물꼬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발맞춰 미국도 대북 제재조치를 완화키로 했다고 밝혀 북한내 위탁가공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새로운 대미 수출 루트가 뚫리게 됐다.

사실 국내 기업의 대북 프로젝트는 대기업의 경우 내수시장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지만 중소기업들은 수출을 위한 임가공 형태의 우회기지를 상정,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기술력과 자본력이 북한의 질좋고 저렴한 노동력과 결합, 제조원가를 낮추고 품질이 향상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문제는 북한 현지 생산제품이 내수를 충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 진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미국 정부의 제제조치로 인해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국내 기업의 대북사업은 향후 통일시대를 겨냥, 북한시장 선점효과를 겨냥했을 뿐 당장의 수익은 기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북한 위탁가공품은 미국 수출이 가장 중요한 중저가 제품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미국과 북한의 관계 탓에 우회 수출기지로서의 매력은 거의 없었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가 대북 경제제제조치를 일부 완화, 수출입을 허용했지만 높은 관세율을 적용해 사실상 대미수출을 봉쇄했었다. 미국 정부는 정상무역에 적용하는 관세의 수십배에 이르는 「컬럼2」로 묶어놓았다. 컬럼2는 일종의 금지관세 성격이다.

이 때문에 일반특혜관세(GSP)가 부여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산 위탁가공 제품의 대미 수출은 중국 제품에 비해 30∼50% 가격이 높아 승산이 없었다.

이같은 현실을 남북정상회담이 바꾸어 놓았다. 미국 정부가 북한산 제품에 대한 대미 수입관세를 GSP수준으로 인하할 것인지의 여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단 정상무역 관세수준만 적용해도 국내 기업들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시기에 국내에 반입,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삼성전자의 유선전화기와 TV, LG전자의 TV 등은 이번 미국 정부의 결정으로 상당한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북한산 제품을 미국 시장에 선보이려 해도 관세가 33.4∼35%에 이르러 아예 포기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오븐이나 밥솥 같은 품목도 관세가 줄어들다면 미국시장을 일정 부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 위탁가공 제품의 미국 수출길이 열린다면 중저가 제품의 경우 중국에 밀려나는 곤혹스러움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또 북한내 생산라인 확충, 인력보강 등 대북경협의 규모와 수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북한이 세계 최대 수입국인 미국에 수출할 상품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나 장기적으로는 숙력된 노동력을 활용한 임가공 상품의 수출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대미 수출 쿼터에 묶여 일정량 이상을 수출하지 못하는 품목의 경우 북한에서 임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할 수 있게 돼 대북 투자효과와 대미 수출효과를 한꺼번에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 정상이 55년간의 냉전을 털고 남북이 서로 발전하는 윈-윈 성격의 새로운 경협시대를 열자마자 미국도 이에 화답하고 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