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중소 납품업체 사장들로부터 B2B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대강 설명을 하고 나면 이내 어떻게 하면 B2B가 가능한 지를 묻는다. 그래서 네트워크와 시스템, 소프트웨어 등 기본적인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고 답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어서 곤혹스러운 때가 많다.』
B2B 솔루션을 판매하는 공급사에서 다반사로 들을 수 있는 얘깃거리다. 단적인 예이지만 이것이 국내 일반적인 중소기업들의 모습일 수 있다.
B2B인터넷의 이한주 사장은 『수출에 종사하는 국내 기업이 3만개를 넘는다. 하지만 이 중에서 EDI를 구축해 사용하고 있는 기업은 8000개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전통적인 EDI의 경우 시스템 구축이 어렵고 비용문제상 확산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국내 기업의 열악한 정보화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룹웨어나 전사적자원관리(ERP). 90년대 초반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업 정보시스템이다. 이제는 시장 포화기에 달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보편화돼 있는 것이 그룹웨어와 ERP다. 하지만 말이 무성한 데 비해 실제 활용도를 보면 기대이하다. 피코소프트 유주한 사장은 『270만개 중소기업 가운데 그룹웨어를 도입한 기업은 40만개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중소기업이 정보화 사각지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고 평한다.
애플리케이션은 차치하더라도 아예 통신 인프라마저도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전산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중소기업의 60%만이 사내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고 기업 전산서버를 도입한 기업은 5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터넷 회선의 경우 전용선을 사용하는 기업은 43%에 불과하며 여전히 전화선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속통신망 구축열기가 한창 뜨거운 일반 가정보다도 중소기업의 통신 인프라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알려주는 셈이다.
그나마 대기업은 정보화에 앞장서 있는 축이다. 자체 전산인력을 확보하고 필요한 업무를 전산화하는 등 발빠르게 정보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계열사 일부에만 국한돼 있을뿐 납품업체나 중소 협력사와 같은 유관기관들이 네트워크로 엮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B2B란 기업과 기업, 구매와 판매기업간의 모든 상거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설계, 제조, 수주 및 납품에서 기업 내부프로세서, 생산, 유통, 물류, 고객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즈니스 단계가 인터넷 플랫폼에서 운영되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 과정이 시스템적으로 뒷받침돼야 진정한 B2B가 실현될 수 있다. 기업과 기업이 고리로 연결돼 있는 전자상거래에서 한 기업이라도 삐걱이면 이내 다른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쳐 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이다. 개별 중소기업의 정보화 인프라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고 전자상거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를 비롯한 민간기업들이 다양한 지원정책을 제시하고 나서 그나마 다행이다. 산자부는 중소기업협동조합 및 지역특화산업 등 지방 중소기업 중심의 소규모 커뮤니티를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또 지난 5월에는 민관합동 대규모 컨소시엄이 공식 출범, 270만개 중소기업의 B2B사업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협동조합 등 중소기업 관계기관을 비롯해 한국IBM, KTB네트워크 등 전체 13개 기관과 업체로 구성된 이 컨소시엄은 개별적으로 진행돼 온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사업을 보다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각종 캠페인과 교육, 커뮤니티 활성화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이밖에 중소기업청과 한국능률협회매니지먼트도 지난 8일 iSME Zone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각 지역별로 ASP센터를 구성, ASP와 아웃소싱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각 민간기업도 중소기업 정보화를 위해 저렴한 가격에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임대해 주는 ASP서비스를 준비중에 있다. 아예 e비즈니스 관련 소프트웨어를 무상으로 기증하겠다는 기업도 줄을 이어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B2B가 활성화되는 시기는 오는 2004∼2005년경이라고 한다. 2005년까지 초고속정보통신망이 구축될 경우 전체적인 정보인프라 현황도 호전되겠지만 이에 앞서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 나름의 노력이다. 2005년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 유수의 기업과 당당히 자웅을 겨루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정보 인프라를 고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시대의 경쟁력은 중소기업에 달려 있고 지금이 바로 단추를 끼워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