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산업이 앞으로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차세대 유리기판의 크기를 표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막대한 투자비용은 물론 위험도 절감, 그리고 수익성 확보와 장비의 국산화에 있어서 국내 TFT LCD 업체간 기판 표준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주장은 최근 제조업체와 장비·부품업체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세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의 치열한 일등경쟁과 이해관계로 그 논의는 좀처럼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쪽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도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왜 표준화해야 하나
유리기판을 절단해 만드는 TFT LCD는 적용한 유리기판에 따라 크기도 달라진다. 이를테면 550×650㎜ 기판에서는 15인치짜리 제품을 4장 생산하나 370×470㎜에서는 1장을 생산한다.
이 경우 생산량도 적은데다 버리는 부분이 생겨 원가가 오른다.
이 때문에 TFT LCD 업체들은 가장 효율적인 기판 크기를 선정하려 하나 서로 다른 공정기술과 제품전략으로 업체마다 기판 크기가 다르다.
특히 이른바 5세대라는 차세대 기판의 크기를 선정하는 것은 어렵다.
5세대 기판은 4세대 이전 기판에 비해 매우 커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공정기술과 장비가 필요하며 투자비도 1.5배 이상 많이 들어 TFT LCD 업체들은 기판 크기 선정에 고심하고 있다.
잘못 골랐다가는 1조5000억∼2조원에 이르는 투자비를 고스란히 건지지 못할 판이다.
기판 표준화는 바로 이러한 위험을 분산하는 방법이다. 특히 1, 2위인 삼성과 LG필립스가 합의만 하면 사실상 업계표준이 된다.
기판 표준화는 장비·부품업체들에 더욱 절실한 문제다. 업체마다 다른 표준을 채택하면 장비와 부품업체들은 일일이 대응해야 해 개발도 늦어지고 개발비용도 커진다. 장비·부품업체들은 특히 제조업체에 비해 투자여력이 적어 투자부담이 더욱 크다.
이는 제조업체에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신규라인 건설에 대한 투자비용과 제조원가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업체들은 1, 2위를 빼앗긴 일본업체와 신흥주자인 대만업체들로부터 맹추격받는 입장이어서 기판 통일은 단순히 투자부담 절감을 넘은 문제이기도 하다.
◇왜 어렵나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는 지향하는 공정기술과 제품·시장전략에서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삼성은 노트북컴퓨터시장에 주력해왔고 LG필립스는 모니터시장에 집중해왔다. 주력제품도 달라 삼성은 17.1인치를 주력으로 생산하려 하나 LG는 18인치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 1위 다툼을 벌이는 두 회사는 어떻게든 상대방보다 큰 유리기판을 채택하려고 한다. 투자시기가 비슷한 상황에서 먼저 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 경쟁도 얽혀 있다.
그렇지만 두 회사 모두 모험할 의사는 없는 듯하다. 투자부담과 위험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차세대 기판 크기를 1000×1200㎜로 잠정 결정해 밝힌 LG필립스는 아직도 확정은 하지 못한 채 공장 기초공사 등 투자부터 들어갔다. 삼성전자도 이미 차세대 라인 투자계획을 세웠으나 기판 크기의 결정을 최대한 늦추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가능성은 있나
삼성과 LG필립스는 일단 기판 표준화에 대해 긍정적이다.
두 회사는 위험성 분산과 시장 조기선점을 위해 기판 통일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또 솔로를 고집하면 자칫 장비·부품업체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같이 하고 있다.
그렇지만 양사 경영진의 자존심과 일등경쟁으로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해 당사자가 직접 협의하는 것이 힘들다면 정부가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업계의 일에 정부가 관여할 이유가 있나」라는 반문에 대해 『국내 TFT LCD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장비·부품업체의 육성 등 정부가 개입할 명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LG필립스의 관계자들은 『상대방이 제의해온다면 표준화 논의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외부의 간섭이 없는 독자적인 협의 가능성을 비췄다.
날로 설득력을 얻어가는 기판 표준화 주장이 삼성전자와 LG필립스를 안팎에서 옥죄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