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의 대명사는 위탁가공이다. 북한의 노동력이 워낙 양질이면서 저렴하다는 이점이 국내 중견기업들의 대북 임가공 사업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남북 교역에 참여한 업체는 모두 581개이며 이 가운데 위탁가공업체가 132개로 밝혀졌다. 북한에서 생산한 품목을 단순 수입하는 것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위탁가공업체가 이처럼 많은 것은 실제로 남북 합작사업의 대종이 임가공 생산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위탁가공 반입액은 역시 섬유류가 전체의 83.8%를 차지해 압도적 우위를 보였고 그 다음은 전자전기 5.3%의 순서였다. 두 분야 모두 저렴한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북한 투자 사업중 위탁가공이 특히 활발한 것은 남한에 비해 인건비가 10분의 1이하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또 성실하고 교육 받은 노동자들, 특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노동력이 유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섬유나 전자전기는 후발 개도국의 맹추격으로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싼 중국, 인도네시아 등으로 옮겨 갔지만 중국의 경우 이제는 완전한 경쟁자의 위치에 올라섰다.
여타 해외 임가공 공장들도 이질적 문화, 언어 소통의 불편, 문맹자가 즐비한 노동자층 등 갖가지 어려움으로 항구적이고도 안정적인 생산기지의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하고 있다.
인건비가 핵심인 노동집약적 기업들로서는 자연히 북한시장을 두드릴 수 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는 위탁가공 분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 남북 화해조치를 지원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 이제는 북한내 위탁가공품을 미국시장에 우회수출하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런 환경 변화는 전기전자산업의 대북 투자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들뜬 기분을 가라 앉히고 차분히 경협 조건을 살펴 보면 과속은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위탁가공업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물류비가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측의 높은 항만 사용료 요구, 소규모 교역에 따른 선박 이용료 상승 등 물류 비용이 과다해 인건비 부문에서에의 장점을 상쇄, 현실적으로 가격 경쟁력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실제로 인천∼남포 20ft 기준 화물 운송료는 900∼1000달러지만 인천∼천진은 250∼300달러에 불과하다. 심지어 인천∼홍콩의 500달러보다 2∼3배나 비싸다.
물류비 비중은 섬유류의 경우 생산원가의 40%를 차지하고 컬러TV는 총매출의 11.2%로 추정된다. 기업으로서는 가격 경쟁력의 핵이다.
이같은 물류비 상승은 북한내 항구의 긴 체선 기간, 높은 항비, 낮은 컨테이너 회수율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턱대고 북한의 싼 인건비만 보고 대북 경협에 달려 들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쉽상이다. 지금도 전자전기 분야의 대북 위탁가공제품은 물류비를 극복 못하고 적자상태라고 한다.
북한 진출을 희망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은 따라서 북한의 물류 조건 등 제반 환경 개선 수준에 따라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교역 확대를 계속하면서 기술 지도를 병행하고 부품 등 위탁가공 품목을 다양화, 기반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다행히 남북 당국자들이 참여하는 경제협력위원회가 가동되고 SOC는 물론 제도적 경협 걸림돌도 차츰 제거될 것으로 보여 임가공업체들은 차분히 단계적으로 북한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