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독서산책>아킬레스 건의 미학

「위대한 장군들은 어떻게 승리하였는가」

베빈 알렉산더 지음

트로이 전쟁에서 패리스는 아킬레스의 정면 공격을 피한 채 그의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화살을 쏘아 무너뜨린다. 그 유명한 「아킬레스건」에 관한 이야기다.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눈앞의 적군을 무시하고 후방의 근거지를 탈취함으로써 스페인 정벌에 나선 카르타고군을 무력화시킨다. 1814년 유럽연합군 역시 목전의 나폴레옹군을 무시하고 프랑스의 심장인 후방의 파리를 쳐 함락시켰다. 이 작전으로 프랑스 군과 국민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나폴레옹은 결국 항복하게 된다.

맥아더는 미군과 한국군을 단숨에 남쪽바다로 밀어내겠다는 조급함에서 남한을 정면 공격한 북한군의 후방(인천)을 침으로써 북진에 성공한다. 그러나 맥아더는 압록강을 향해 정면 진격토록 한 50년 11월 작전에서 역으로 중공군에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는 북한지역을 동서로 가르는 낭림산맥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8군을, 동쪽에는 10군단을 분산 배치했는데 산악이동에 능했던 중공군이 이 낭림산맥의 공백을 친 것이다.

19세기 프로이센의 이론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목적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고 규정한다. 남북전쟁 당시 유명한 남군 기병대장 포레스트도 『위대한 장군들의 승리비결은 가장 많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 가장 먼저 그곳에 도달하는 것(To get there first with the most)』이라고 한 것도 정치적 목적론을 뒷받침한다.

그러니까 군사적인 전쟁은 앞뒤 가리지 않고 적과 정면 교전하자는 정공법이 난무해 백전백패하도록 돼 있고, 정치적인 전쟁은 「아킬레스 건」을 찾아 우회하거나 역공함으로써 백전백승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스키피오나 맥아더와 같은 역사상 위대한 장군들의 공통점도 바로 우회전법이나 역공법, 즉 계책에 능했다는 점에 있다. 위대한 장군들이 채택한 계책은 사실은 매우 단순한 것일 수 있다. 계책이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사물의 이치(원칙)를 보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BC400년경 손자는 『모든 전쟁은 술수와 기만에 근거한다. 공격할 때 공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하고 군대가 이동할 때 이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하며 적과 근접해 있을 때는 멀리 있는 것처럼, 멀리 있을 때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믿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자는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강한 것을 피하는 것이며 강한 것을 피하는 방법은 「약한 것을 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계책의 극치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위대한 장군들의 사례는 계책만이 전쟁을 승리로 가져다준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상황이 되면 대부분은 적을 우회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다. 그런 기회를 무시해버린다는 표현이 차라리 옳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구나 찾아내기 쉬운 분명한 목표물을 직접 공격하고 만다는 것이다(분명한 목표물은 그만큼 방어벽도 탄탄하기 마련이다).

물론 짧은 시간에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류는 오랜 역사를 통해 자신이 속한 조직에는 충실하게 되지만 조직 밖의 사람들에게는 호전적 성향이 되도록 길들여져왔다. 친구와 협력하든 경쟁자와 싸우든간에 완곡하거나 우회적이기보다는 언제나 직접적인 성향을 보이고 마는 것이다. 위대한 장군들은 인류의 이러한 오랜 습성에서 벗어나 상대를 속일 필요성과 적을 직접 공격하려는 원초적 본능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위대한 장군들은 어떻게 승리하였는가」는 스키피오·징기스칸·나폴레옹·마오쩌둥·롬멜·맥아더 등 원칙을 제대로 볼 줄 알았던 비전있는 장군들의 「단순한」 계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나 단순하게 위대한 장군들의 전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수많은 지도자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전쟁의 목적은 전장에서 적을 완전히 섬멸하는 것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전편에서 이런 메시지를 일관되게 찾아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진정한 재미가 될 것이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