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특히 전자정보통신업계로서는 고려해야 할 대내외적 요소가 적지 않다.
바세나르협정이라는 국제적 변수와 북한 비즈니스시 반드시 지켜야할 금기사항을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
바세나르협정은 냉전체제 해체에 따라 자연히 소멸된 코콤(COCOM) 즉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를 대신하는 새로운 수출통제 협정이다. 지난 95년 체결된 이 협정은 우리도 서명했으며 상용무기와 이중용도 품목 및 기술의 불법 축적 방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핵심은 군사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제품의 공산권 반출을 묶어 두는 것으로 △신소재 △소재가공 △전자 △컴퓨터 △통신장비 △레이저 센서 △항법장치 △해양기술 △추진장치 등이 포함된다.
우리 정부는 남북한 대치상황을 고려, 바세나르협정과는 별도의 대북 전략물자 반출에 관한 규정을 갖고 있다. 바세나르협정에 해당하는 품목은 물론 제어계측기기 등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 반출해야 할 정도로 엄격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전자가 북한의 삼천리 총회사와 컴퓨터 생산설비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기자재 반출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정부의 승인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전략물자 수출입공고상의 수출통제 제도의 취지와 대북 반출시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을 고려, 반출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여건상 전자정보통신업계의 대북사업이 확산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제도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물론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정부의 전략물자 반출심사는 어느 정도 탄력적 운용이 기대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개방」은 어려울 것이고 바세나르협정이라는 국제 규약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진출에 나서는 전자정보통신업계는 이같은 현실의 벽을 사전에 충분히 스크린해야 한다. 시장 선점을 겨냥했건 미래 시장을 위한 선투자가 됐건 기껏 돈 들여 현지사업을 준비하고 나서 법 규정으로 막판에 물거품이 되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남북경협에 대한 정부의 그랜드플랜이 요구되고 이에 따른 전자정보통신의 대북 진출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이중과세방지, 투자보장 등 일반적인 원론적 경협 보장제도는 전자정보통신업계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따라 정부의 전략물자 반출이 신축적으로 적용된다고 가정할 때 남는 것은 북한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는 것 뿐이다.
시스젠의 권오홍 사장은 하나로통신이 주최한 「인터넷과 북한」이라는 심포지엄에서 오프라인에서 나타난 대북사업 13개 문제점을 제시, 관심을 끌었다.
정치적인 문제는 너무 민감해 비즈니스 협력 분위기를 저해하고 정확한 사업 방향이 없으면 브로커 성향으로 흐른다고 지적했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것도 금기시해야 하며 중개인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어렵고 서로 북한 전문가로 자처하는 여러사람과 접촉하다 보면 사업 초점이 흐려진다고 한다.
한건주의로 대북사업을 추진하면 금방 노출된다. 특히 경협이 활성화될수록 한건주의는 북한측의 비판 대상이 된다. 북측과 신뢰를 쌓아 나가고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경비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 또한 짧게는 몇년, 길게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북한은 빗장을 풀려고 한다. 아직은 문을 활짝 열어제친 것인지, 아니면 그 의도만 비춘 것인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는 성숙되고 있다.
북한에서 정책이건 사업이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하루 1시간씩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태생적으로 무력을 신봉했던 빨치산 1세대들이 물러가고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집단이 북한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경제에 합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자정보통신분야의 대북 프로젝트는 북한을 디지털경제로 끌어들이는 촉매제가 될 것이고 그래서 다른 어떤 분야의 협력보다 중요하다.<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