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본지와 인텔리서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B2B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707명 응답자 중 41.4%가 경영진의 마인드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B2B의 성공 여부가 최고 경영자 및 임원진들의 태도와 의지에서 판가름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B2B 솔루션 사업을 추진해 온 I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 3개월동안 여러기업의 CEO, CIO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상태로는 B2B는 요원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B2B를 두려워하고 있는 최고 경영자도 적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의 관계자 역시 『대부분의 기업이 대외적으로는 정보기술(IT), 첨단 경영, 디지털 인프라, B2B 등 화려한 수식어구를 동원하고 있지만 실제 본격적인 추진을 위한 예산 책정이나 집행 단계에 들어가면 다시 구태의연한 아날로그식의 업무 관행으로 돌아가는 것이 다반사』라고 꼬집었다.
즉 대다수 B2B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과연 B2B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지, 이를 위해 기존 거래구조를 혁신하고 투명 경영을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고 경영자의 이러한 태도는 ERP, SCM 등 개별 IT 솔루션 도입과 통합 인프라 구축은 물론 거래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하는 B2B에서는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이 지적하는 최고 경영자 및 임원들의 문제점은 우선 B2B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B2B의 효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B2B를 위해 필요한 예산이나 기업 업무관행 개선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부 경영자들의 경우 B2B로 모든 기업내 거래현황이 투명해지고 경영 구조가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2B는 거래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거래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이중 장부, 무자료 거래, 거래 담합, 리베이트 등 기존 국내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로 여겨져온 문제들을 시스템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투명한 거래구조가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는 것. 중소기업 역시 조직과 시스템의 힘으로 경영하는 구조보다는 창업자의 직관과 인맥에 의해 사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B2B의 철학과는 상충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이 같은 태도는 박약한 예산이나 턱없이 부족한 인력 문제로 이어진다. B2B를 하겠다고 발표한 모 대기업 계열사의 올해 공급망관리(SCM) 예산은 고작 18억원. 지난해 매출액 10조원을 거뜬히 넘긴 회사의 예산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이 회사 CIO는 올해 SCM 적정 예산을 300억원으로 보고했으나 최고 경영진에서 이 이상은 안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는 비단 이 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IDC나 가트너 등 해외의 주요 분석기관에 따르면 글로벌한 외국 기업의 평균 IT예산은 연간 매출액의 5% 수준. 그러나 국내의 경우 가장 IT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는 삼성그룹의 일부 계열사조차도 2%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기업은 1% 미만의 빈약한 예산으로 흉내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B2B 도입예정 기업의 올해 전체 전산 예산이 평균 33억원에 불과한 것만 봐도 B2B에 할당되는 비중이 얼마나 미약할 것인지 짐작된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전문가는 『어차피 국내 업체도 글로벌한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하는 만큼 B2B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라며 『일시적인 문제와 불편함에 집착해 거시적인 흐름을 놓친다면 결국 기업의 부실화로 인해 최고 경영자에게 그 책임이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