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 상품화와 MP3파일 상용서비스를 시작했고 전세계 MP3플레이어 생산량의 80% 가량을 소화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이어 수많은 국내 벤처기업들이 MP3를 필두로 한 디지털음악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으며 관련 신상품들을 잇달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음반사를 주축으로 한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와 디지털음악저작권단체 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의 합공작전에 디지털음악시장의 주도권은 점차 미국으로 쏠리는 추세다.
가장 우선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디지털음악 포맷의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는 SDMI표준안이다.
SDMI는 디지털음악의 저작권 보호를 내세워 전세계 모든 업체에 불법복제 방지기술의 탑재를 요구하면서 디지털음악 관련 기기의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다. 또 새로운 포맷의 디지털음악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내 음반업체들과 대기업들이 중심을 잃고 SDMI를 맹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세계 최대의 MP3플레이어 생산국, 세계 최초의 MP3상용서비스 국가, 세계 최초의 복제방지기술 개발 국가로서의 위상과 자존심을 버리고 미국 RIAA의 정책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최근의 움직임은 국내 디지털음악산업의 발전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여러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우리 음악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데 미국의 기술에 의존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음악사용의 양태가 다르고 복제에 대한 인식도 차이가 있는데 똑같은 기술을 적용시킨다는 것은 허점을 낳기 쉽다. 더욱이 기술의존은 종국에는 콘텐츠 종속으로 이어져 우리 얼이 담긴 콘텐츠가 남의 나라 것이 될 수도 있다.
또 우리 가요를 서비스하고 판매하는 데 미국계 업체에 로열티를 지불하며 서비스하는 것이 과연 꼭 필요한 일인가를 한번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국내 음악시장의 70% 이상을 가요가 점유하고 있는 현실로 볼 때, 우리 가요를 듣기 위해 외국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여기에 오프라인에서의 저작권관리체계는 외국곡이라 하더라도 국내에 판매되고 방송되는 음악의 저작권관리를 국내 저작권관리단체에 위탁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러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의 저작권관리 주체의 혼선이 서비스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도 걱정된다.
결국 미국은 SDMI를 내세워 음악은 물론 디지털 콘텐츠 전반에 관한 사양을 제정, 인터넷 인프라에서의 문화상품 서비스 전반에 대한 주도권을 쥔다는 전략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미국에 목을 메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요 음반사들이 미국에 본사를 두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래서 이토록 우리의 자존심과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들에게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에겐 새로운 시장이 필요하다. 우리의 자존심과 기득권을 유지하며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옆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중국 및 동남아시아 시장이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훨씬 넘는 아시아시장은 구매력 또한 미국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정치적 이념과 체제의 벽이 헐리고 본격적으로 개방의 물결이 출렁인다.
현재 중국에는 삼성·LG·새한·디지털웨이 등 국내 MP3플레이어 제조업체들을 비롯해 다이아몬드사, 파인그룹, 대만 및 싱가포르 등 많은 외국계 업체들이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다. 또 유료사이트는 아니지만 100여개의 음악사이트가 디지털음악을 서비스중이며 휴대형 플레이어시장은 점차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음악콘텐츠는 그야말로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정도면 MP3음악파일이 100곡 정도 수록된 CD를 구할 수 있다.
이처럼 초기 단계의 디지털음악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중국 및 아시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MP3가 익숙해지도록 무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에 익숙해지고 사용자가 충분히 확보되면 서비스를 유료화하고 저작권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시아시장의 잠재력은 중국이 미국의 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나름의 독자적 방식을 만들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앞선 기술과 중국의 시장이 만난다면 세계를 주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MP3 관련 산업이 자체의 시장에서 활성화된다면 우리의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우리의 것이 필요하다. SDMI를 연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시장을 지키고 나아가 아시아시장을 개척할 우리만의 독특하고도 우수한 제품과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전세계 절반이 넘는 아시아가 미국에 협조하고 머리를 조아린다면 결국 세계 디지털 콘텐츠시장은 미국에 종속되겠지만, 반대로 우리가 독자적인 음악과 콘텐츠시장을 형성하게 된다면 SDMI는 단지 미국이 쌓은 또다른 무역장벽의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