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맥주로 널리 알려진 두산그룹의 박용성 회장.
그가 지난 28일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그리고 그 산하 15개 기관들이 제각각 추진해 오던 전자상거래표준화 작업을 민관합동으로 추진하기 위해 구성한 전자상거래표준화통합포럼(ECIF)의 초대회장으로 추대됐다.
ECIF는 전자상거래(EC)에 대해 『전자상거래도 상거래인 만큼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산자부, 『전자상거래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만큼 정보통신 분야의 업무』라며 역할론을 주장해 온 정통부가 손잡고 출범시킨 단체다.
혹자는 왜 느닷없이 대한상의 회장인 그가 전자상거래 표준화를 주도하는 기구의 장을 맡았느냐며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이 역할을 위한 「최적임자」라는 데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는 재계의 알 만한 사람이 다 알아주는 컴퓨터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80년대 초 컴퓨터가 국내에 처음 도입될 때부터 이를 손에 익혀온 컴퓨터 사용의 달인이다. 최근 몇 년새 사이버경영 붐이 일면서 이제는 전자결재 등의 용어가 익숙해져 있지만 박 회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사이버경영을 실천해 온 경영인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 컴퓨터를 떼어놓는 법이 없다. 해외출장 중이든 사무실에서건 국내외 어디서든 그는 노트북컴퓨터와 함께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노트북컴퓨터로 경영업무를 수행해 온 그인 만큼 이번 전자상거래표준화통합포럼의 회장으로 피선된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는 노트북컴퓨터를 이용한 업무지시에만 능통한 게 아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이미 IMF사태가 시작된 97년말 국내 대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을 도입해 그룹내 모든 사업장에 적용했다.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이란 한 회사의 회계·인사·자재관리·영업·생산에서 물류에 이르는 모든 기업활동을 하나의 프로그램과 시스템으로 일관되게 관리해주는 시스템이다. 물론 컴퓨터와 관련 핵심프로그램 없이는 불가능한 고도의 기업 경영·정보화시스템이다.
박 회장은 이때 이미 정보화를 통한 경영합리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룹내에 ERP구축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미국 전문업체와 제휴해 국내업체들의 공급망관리(SCM)라든가 경영합리화 작업 추진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두산그룹에서는 그가 해외출장을 떠나면 오히려 더욱 긴장한다고 한다. 출장 중의 업무지시가 국내에 있을 때보다 더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것.
박 회장은 지난 5월 9일 대한상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미 전자상거래 활성화와 확산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많은(?) 경험을 했다. 상의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굴뚝산업에 날개를 달자」며 대한상공회의소의 정보화를 주창했던 그는 당시 『상의 회원사들이 왜 홈페이지 같은 것을 만드느냐고 말해 애먹었다』며 웃는다.
『전국 62개 상공회의소에 공문 한 장을 보내더라도 61장을 일일이 보내야 합니다. 더 이상 팩스시대에 살 수는 없습니다.』
상의의 정보화에 대한 그의 의지는 굳다.
116년 전 보부상을 중심으로 한성상공회의소(대한상의 전신)가 창립된 이래 처음으로 상의는 박 회장의 신념에 따라 정보화·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물론 국내 최초로 민관합동의 전자상거래 표준화담당기구인 ECIF의 효율성과 표준화를 통해 글로벌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박 회장의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당신네 아들딸들이 컴퓨터를 만지고 노는데 언제까지나 기존 상거래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며 상의 정보화에 대해 회의적인 회원들을 설득했다는 그의 말속에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웅변이 숨어 있다. 디지털 시대에 EC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자 철학이다.
『이제 전통적 방식인 오프라인 방식 상거래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굴뚝산업과 디지털산업의 중요성을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논쟁처럼 무의미하지요.』
지금은 누가 얼마나 빨리 전자상거래쪽으로 돌아서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에 온라인으로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중소기업들이 팩스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면 말이 됩니까. 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그의 말도 따지고 보면 기업정보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의 고민과 다짐의 반영이랄 수 있다.
그는 ECIF의 회장 이전에 5만여 회원을 가진 상의의 수장으로서 당장 업종별 DB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오는 7일 kocham.net이란 데이터베이스 정보망을 개통하는 것을 계기로 이 분야에 대한 사업이 본격 궤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상의 회장 취임 1개월여의 짧은 기간에 이처럼 많은 경험을 한 박 회장이 명실공히 국내 전자상거래 분야의 표준화와 기술개발을 총괄하는 민관합동 기구의 초대회장에 올랐다.
이제 그에게 맡겨진 역할은 이들과 함께 명실상부하게 국내 전자상거래의 기술개발과 표준화가 잘되도록 지휘하는 일이다. 그의 어깨에 우리나라 전자상거래 산업발전의 주춧돌을 놓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이미 ECIF 출범과 동시에 오는 10월 말까지 관련 업계와 산학연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야 하는 등 향후 작업일정이 꽉 짜여져 있어 이의 구상에 여념이 없다.
IMF외환위기 하에서 OB맥주와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모범적인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부각된 박 회장은 이제 정보화의 전도사로 또다른 거보를 내디딘 셈이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에서 펴낸 두산 세계대백과 CD엔사이버 제작을 직접 진두지휘할 정도로 웹에 대한 감각과 열정을 가지고 있고 전국을 돌며 사진촬영작업에 매달리는 정력가로도 알려져 있다. 주변 관계자들은 취미가 일과 사진인 그가 요즘 새벽잠이 없어졌고 해당실무자에게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e메일을 보내는 일도 다반사라고 귀띔한다.
상의 창립 116년만에 「굴뚝산업에 날개를 달자」며 디지털 시대에 적극 대응하자고 나선 박 회장이 ECIF회장을 맡은 만큼 전자상거래의 앞날이 밝게 느껴진다면 지나친 찬사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전자상거래 구축은 이제 얼마나 빨리 가느냐 하는 게 관건입니다』라고 말하는 박 회장의 열정과 추진력을 볼 때 ECIF의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전자상거래를 잘하기 위해 큰 맘먹고 땀흘려 볼 겁니다. 그러면 정부도 도와 주지 않겠습니까.』
진인사대천명을 좌우명으로 삼는 그이기에 단구인 그의 말에도 새삼 무게가 느껴진다.
이제 그에게 맡겨진 역할은 이들을 추스리고 명실상부하게 국제표준업무를 지휘하는 일이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노트북 컴퓨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컴퓨터업체 홍보까지 다해주네』라며 익살을 부렸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