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독서산책>미래는 혁명이다

「21세기 사전」

자끄 아탈리 지음

휘황찬란한 무도회장. 진수성찬의 뷔페 음식이 마련되어 있고 손님들은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우아하게 춤을 춘다. 그런데 그들 중 몇명만이 무도회장이 조만간 폭발할 것이라든가 아니면 아주 격렬한 싸움장이 벌어질 것임을 알아차린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무도회장을 황급히 빠져나간다면 파티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고 남아 있는다면 사고 피해자가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구 근처에서 춤을 추기로 한다. 조금이라도 심상치 않은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비상구를 통해….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미래학자 또는 전략가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예측해왔지만 사실 미래란 비상구 근처에서 춤을 출 때의 조마조마함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예측은 맞아 들어간 것보다는 빗나간 게 더 많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휴대할 수 있는 인쇄물 즉, 종이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 로마제국의 전략가들은 책을 이용하면 유럽을 라틴어 중심으로 통합할 수 있을 것으로 장담했다. 그러나 책이 나온 지 불과 50년도 안돼 각 지방의 방언과 문법서들이 간행되면서 민족주의의 출현을 낳았고 제국은 분열하고 말았다.

축음기가 발명되던 시절 미래학자들은 축음기가 걸핏하면 파업을 일삼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를 대체할 것으로 보았다. 1943년 IBM의 창업자 토머스 ●슨은 세계적으로 컴퓨터가 5대만 있으면 족할 것이라고 했는가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는 1960년, 20세기말이면 소련의 경제가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쥘 베른과 아서 클라크와 같은 SF작가는 자신들의 소설을 통해 20세기 기술변혁의 핵심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예측했다. 러브크래프트, 아시모프, 브래드버리와 같은 작가도 마찬가지다.

빗나간 예측과 적중한 예측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두 유형의 예측을 조금만 주의깊게 따져보면 한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빗나간 예측은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나 객관적 토대 위에서 행한 것들이다. 로마클럽이 2010년경 세계 석유부존량이 바닥날 것이라든가, 2000년경 멕시코시티 인구가 22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식이다. 빗나간 예측은 과학이라는 이론적 틀을 지나치게 숭상한 결과다. 수학적 연역법에 의존하다보면 새로운 모든 것은 기존의 존재가치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반면 적중한 예측은 이러한 단선적인 이론의 틀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례들이다. 적중한 예측은 또한 빗나간 예측이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던 전쟁, 기아, 예술, 혁명, 죽음 등 역사의 대세를 읽고 주변적인 것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아낼 줄 알았던 여유의 결과이기도 했다.(그런데 아쉽게도 적중한 예측의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소설에서나 존재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인구의 변화, 사회 역학, 지정학적 관계, 이념의 변화, 대중의 성향 등 위험 부담이 큰 요소에 대해 담대한 방법론적 도박을 전제로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끄 아탈리가 21세기 예언서 「21세기 사전」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이책을 통해 『역사에는 단선적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미래를 계급간의 충돌로 본 마르크스주의자의 예측이나 이성의 진보로 본 자유주의자들은 예측 모두 빗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사전」은 21세기에도 인류에게 회자될 「가족」 「빈곤」 「성(SEX)」 「유목민」 「인간」 「직업」 「전쟁」 「문명」 「신분」 「영어」 「한국」 「중국」 등 약 400여개의 용어가 엄선돼 사전식으로 풀이돼 있다. 그러나 이들 용어의 풀이는 철저하게 자끄 아탈리식의 도박이 가미돼 있다. 용어의 풀이가 지향하는 시점은 2050년 쯤이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