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에게 듣는다>15회-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

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은 거침이 없다. 꼭 해야 할 말은 어떤 자리에서라도 내뱉는다. 그의 불같은 성격은 지난해 반도체 빅딜 협상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구 사장은 생산회의에서 한 임원이 『회사의 품질관리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품질은 「네고(nego)」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호통을 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LG필립스의 임직원들은 구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 때 무척 긴장한다. 혼쭐이 날까 봐 조바심이 들어서다.

그렇지만 구본준 사장은 『관심이 없으면 왜 꾸짖겠는가. 애정의 표현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구 사장은 요즘 사업에 푹 빠져 있다. 해외 바이어, 연구소, 공장을 시계추처럼 오갈 정도로 일에만 매달려 있다.

『재미있습니다.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로 만든 계기판을 단 전투기와 장갑차를 생각해보세요.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합니다.』

취임한 지 1년인 구 사장의 당면목표는 세계 일등. 생산규모는 물론 매출에서도 명실상부하게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꿈을 꾼다.

구본준 사장에게서 그 꿈이 얼마만치 다가왔는지, 이를 어떻게 앞당기려는지 들어봤다.

-무척 바쁜 것 같다.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바깥에 있는 것이 더 좋다. 만드는 제품을 거의 다 수출하는데 안에서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경영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지난 상반기 실적은.

▲수요가 급증해 실적이 매우 좋다. 5월부터 재고가 없다. 매출이 40% 이상 늘어난 1조3000억원에 이를 것 같다.

-최근의 가격하락세에 걱정이 많을텐데.

▲가격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9월부터 성수기다. 그리 심하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가격 포지셔닝도 잘 해놨다. 앞으로 가격하락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가절감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다.

가격이 하락하면 없었던 시장도 생긴다. 웹패드나 IMT2000과 같은 신규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수요확대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가격하락은 불가피하다.

-대만업체들은 위협적인가.

▲대만업체들은 드라이브IC 칩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장을 돌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선발업체보다 후발업체가 가격하락으로 인한 영향을 받게 된다.

-5세대 규격을 아직 확정하지 않았는데.

▲일부러 빨리 할 필요가 있겠는가. 장비업체들은 먼저 결정한 업체에 따라오기 마련이다. 삼성전자와 우리 회사는 제품 전략 자체가 다르다. 삼성이나 우리나 가장 유리한 쪽으로 규격을 잡으면 된다. 연말까지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필립스와 제휴해 장단점이 있을텐데.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장점은 필립스의 우수한 기초 기술과 마케팅을 활용하는 것이고 단점은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것이다. 요즘은 의사결정도 빨라졌다.

-일등 전략은.

▲먼저 기술부터 일등이어야 한다. 또 일등이 되려면 직원 하나하나가 일등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뭐든지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스마트하게 열심히 해야 한다」고 본다.

-현장경영을 중시하던데.

▲매주 공장을 방문해 생산회의를 한다. 직원들이 싫어하는 것을 잘 안다. 프로젝트 진행여부와 생산수율, 바이어의 불편사항을 주로 점검한다. 처음에는 4∼5시간 걸렸으나 요즘은 1∼2시간이면 끝난다.

-구동 칩 구득난은 풀렸나.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나 일본업체로부터 받는다. 구입물량이 커 상대적으로 수급이 안정됐다. 대만업체들은 힘들 것이다.

-구동 칩 때문에 매각한 반도체사업이 많이 생각나겠다.

▲동부도 새로 뛰어들지 않았는가. 아쉬움은 남지만 지난 일이다.

-중점 투자분야는.

▲시장이 워낙 커 생산확대가 급하다. 가동에 들어간 4세대 라인의 수율 안정화와 5세대 라인 투자도 서두르고 있다. 대형 고객 확보도 중요하다. 이번에 계약한 미국 회사도 항공기 분야의 대형 고객이다.

LCD TV와 휴대형 시장이 커질 것이다. 제품을 다양화하겠다.

저온 폴리를 시험생산해봤더니 결과가 좋았다. 하지만 생산라인은 수요에 맞게 탄력적으로 구축하겠다.

-다른 사업에 진출할 뜻은 없나.

▲LCD 하나만으로도 벅차다. LCD 자체도 재미있다.

-일등은 언제쯤 가능한가.

▲생산규모만 보면 하반기에 가능하지 않겠는가. 삼성전자가 신공장을 본격 가동하면 1위를 내주겠지만 이번에 가동에 들어간 680×880 라인에 투입한 장비들은 검증을 많이 받아 생산 1위를 당분간 지킬 것이다.

-LCD산업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LCD는 반도체 다음가는 효자산업이다. 기술적으로는 LCD 기술의 국제 경쟁력이 반도체 기술보다 낫다. 역사도 5∼10년밖에 되지 않아 발전 가능성도 높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