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많은 코스닥 등록심사>하-예비심사 제도보완 시급

지난 5월 22일 모 증권사 회의실에 닷컴기업 임직원과 주간사 팀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은 코스닥등록 심사청구서 제출에 앞선 마지막 회의다. 그동안 숱한 회의를 통해 청구서를 보완해 왔는데 그래도 한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어서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회의탁자 위에는 심사위원 명단과 영향력 있는 인사명단이 놓여 있었다.

한동안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한숨 끝에 누군가가 말문을 열었다. 벤처기업이라는 이점을 살려 밀어 부치자는 의견이다. 벤처기업은 재무사항 면제라는 심사규정의 허점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되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뭔가 확실한 결정타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탁자 위의 영향력 있는 명단에 눈을 돌렸다.

코스닥등록은 부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모든 벤처기업의 꿈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 그러나 코스닥시장에 등록될 때까지 기업이 넘어야할 산은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보다 때로는 더 험난하다. 그들 앞에 예비심사청구라는 최대 관문이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자칫 예비심사에서 보류 및 기각판정을 받으면 최소한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미국 나스닥시장을 벤치마킹해 온 코스닥시장이 나스닥에도 없는 예비심사청구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은 나스닥상장보다 상대적으로 등록문턱이 낮아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지난해 8월 도입됐다.

실제로 코스닥등록 요건중 가장 중요한 재무사항에 대해 벤처기업은 면제대상이다. 중소기업도 납입자본금 5억원 이상, 자본잠식이 없어야 하고 최소한 1년간 경상이익이 발생해야 하며 부채비율도 업종평균의 1.5배 이내 등 최소한의 기업요건만을 심사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나스닥시장은 네이셔널마켓(대형기업)의 경우 순자산 1800만달러(200억원), 시가총액 7500만달러(850억원), 경상이익 100만달러(세전 11억원) 이상이고 스몰캡마켓(중소형기업)은 순자산 400만달러(45억원), 시가총액 5000만달러(570억원), 경상이익 75만달러(세후 8억원) 이상인데 이 중 한가지만 충족되면 상장이 가능하다.

나스닥시장은 명백한 재무상장 요건과 기업지배구조만 충족되면 상장이 가능한 반면 코스닥은 벤처기업 육성이라는 현 정부의 공약에 발목잡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재무요건과 기업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주사업의 매출빈약이나 주식관리자 부족 등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에 심사비중을 더 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칙없는 심사기준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외부의 청탁을 거절할 명분도 없는 것이다.

은행 기업금융팀의 한 관계자는 『심사청구서 작성에 기업의 자산가치나 경상이익보다는 인력배치나 대주주 등 특수관계인들의 회사기여 등 기업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항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며 『우리도 나스닥처럼 재무요건을 강화하는 현실적 대안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권 인수공모팀 관계자는 『보류 및 기각기업의 사유를 공개함으로써 심사의 공정성을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며 『심사과정의 잡음을 없애기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심사를 하는 방법도 하나의 방안이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주간증권사가 책임지고 코스닥에 등록시키고 그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경우 주간사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지난 96년 7월 코스닥시장이 출범한 이래 7월 6일 현재 540개 업체가 코스닥시장에 등록돼 있다. 숱한 벤처스타를 탄생시킨 코스닥시장이 부와 명예를 꿈꾸는 수많은 예비창업자들에게 희망봉이 될 수 있도록 건전하고 투명한 등록심사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봉영기자 by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