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대 학부제

『수강인원을 충분히 수용할 만한 강의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실험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K대 전자정보학부 Y군)

『커리큘럼이 학기마다 바뀌고 학부로 편입되는 바람에 전공필수로 이수했던 과목들이 선택과목으로 변경되는 등 혼란스럽습니다.』 (K대 전자정보학부 K군)

학생들에게 폭넓은 수강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의 학문적 취향과 적성에 맞는 학문을 선택하도록 의도했던 각 대학 학부제가 학생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학기 경희대 공대 학생회는 「공간조정에 기초한 공과대학 6개 요구안」을 학교측에 제시한 상태다.

경희대 학생회가 제시한 핵심은 법적 공간 확보문제로, 현재 교육법에 명시된 교육기본시설과 지원시설(공학계열 1인당 약 6.17평)에 공대가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경희대측은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법적인 수치를 만족시킨 사립대학이 어디 있느냐』며 『더군다나 우리 학교는 전체로 봤을 때 공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며 공과대학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는 무책임한 반응을 보였다.

강의실·실험실·휴식공간의 부족문제는 학생들이 학부제 시행 이전부터 제기했던 문제로 학부제가 본격 도입된 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불만이다.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한 강의를 100명 이상 수강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 인원을 수용할 크기의 강의실이 확보되지 못한데다 많은 학생들이 신청한 과목은 전공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수강인원 초과로 수강기회를 상실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각 대학 이공대의 경우 수업 대부분이 실험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충분한 실험실 마련은 기본사항임에도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전무하다.

또 한가지 문제는 체계화된 커리큘럼의 부재다.

『제대 후 복학을 하고 나니 과가 사라졌고 더군다나 재수강해야 할 과목이 없어져서 학점을 만회할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K대 자연과학부 Y군)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어서 갈피를 못잡고 이 강의 저 강의 듣다가 졸업할 때가 돼서야 자기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일은 피해사례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

한편 순수학문의 경우 전공을 선택할 시기가 되면 인기학과에 학생들이 몰려 인원부족으로 학과의 존립이 위태로운 경우가 허다하며 그에 따른 결과로 순수학문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것은 학부제 시행과 동시에 대학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다.

제대로 된 학부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적극적으로 사고를 전환하고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의지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대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찾을 수가 없고 학부제와 관련된 학생들의 불만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각 대학 공과대 학생회장들은 『대학들이 서로 다른 학교의 부족한 점을 비교하며 그것이 정당한 이유인 것처럼 무조건 학생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며 『학부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대학 모든 구성원의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명예기자=이윤선·경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