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재발견>3회-교육 실태

국내에서 아날로그 기술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아날로그를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 디지털이 0과 1의 조합, 즉 정답이 분명한 로직을 다루는 학문인 데 비해 아날로그는 선형적(linear)인 특성 때문에 배우기가 까다롭고 오랜기간의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국대 송민규 교수는 『아날로그를 전공하게 된 것은 단지 남들이 골치아파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라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배우기 쉬운데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디지털만 전공하려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아날로그 기술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곧바로 교육기반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아날로그를 전공한 교수는 회로분야를 전공한 김원창 교수(서울대), 박송배 교수(한국과학기술원 출신) 등 원로를 비롯해 송민규 교수(동국대), 유회준·조규형 교수(한국과학기술원), 이승훈 교수(서강대), 최중호 교수(서울시립대) 등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척박하다. 따라서 현재 국내에서 아날로그를 배우고 있는 학생은 이들 밑에서 수학하고 있는 석사급 40여명, 박사급 60여명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 교수는 『국내 전자관련 학과 교수들 대부분이 디지털 통신, 프로그래밍 등 정보산업 분야를 전공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아날로그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교수는 10명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며 『설계, 특히 아날로그 설계 분야를 전공한 교수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그나마 아날로그 전공교수마저도 외부에서 몰려드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어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계 고등학교, 전문대, 대학 등은 물론 대부분의 대학원에서조차 아날로그를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각 대학 당국이 아날로그를 전공한 교수를 신규 임용하려고 하지 않아 앞으로도 상당기간은 제대로 된 아날로그 교육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데 있다.

한 아날로그 전공 교수는 『교수 임용시 아무리 아날로그 전공자를 추천해도 결국 최종 인사결정권을 가진 총장은 교육 수요가 많은 디지털 전공자를 택하고 만다』며 『학교측에 아날로그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한다.

디지털에 편중된 교육 수요는 곧바로 국내 대학의 전자관련 커리큘럼의 심각한 왜곡현상을 가져오고 있다.

현대전자의 이찬희 이사는 『아날로그와 관련된 기초기술을 대학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외국과는 달리 석·박사과정에서 가르쳐야 할 반도체·재료공학과 같은 응용학문을 학부에서 가르치고 있는 국내 대학의 교육과정에 문제가 많다』 지적했다.

따라서 이 이사는 『최근 입사하는 신입사원들 대부분이 반도체공학·재료공학·전자계산학 등을 전공하고 있어 입사 이후 기본교육부터 다시 시켜야 한다』면서 『기초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는 대학교육과정을 전면 손질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기업내 아날로그관련 재교육도 학교 못지 않게 심각한 상황이다.

아날로그 기술자들이 거의 없는데다 그나마 있는 기술자들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관리직으로 물러앉거나 보다 보수가 좋은 다른 분야로 전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기술 전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국인 기업에 근무하는 한 연구원은 『아날로그와 관련, 국내에서는 전문가가 없다보니 파워서플라이 정도의 개발만 수행하고 중요한 핵심기술 개발은 대부분 본사나 선진국내 지사에서 이뤄진다』며 『국내 기업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베 HP 디비전에서 1년여간 근무했던 한국애질런트 연구소의 이형규 과장은 『아날로그 기술은 도자기를 빚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며 『아날로그는 교과서로 배울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선임자로부터 경험을 물려받는 도제방식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과장에 따르면 고베 HP 디비전 근무 당시 전체 25명의 아날로그 기술자 중 5명이 20∼30년 베테랑이었으며 체계적으로 축적된 기술문서가 기술 전수에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기업들이 기술 전수에 등한시한 결과 연구개발도 파행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한 아날로그 전문가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 분석과 해석에 따른 설계가 아니라 트러블 슈팅, 즉 시행착오를 거쳐 설계를 하다보니 일단 개발기간이 단축되는 것 같지만 설계 이후 나타나는 수많은 버그를 제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대학 당국과 전자관련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기술교육 풍토에서는 우리나라 아날로그 기술의 미래가 결코 밝을 수 없다는 한 전문가의 말을 되새겨 들어야 할 때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