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생활을 심각하게 압박했던 IMF가 우리에게 유일하게 던져준 교훈은 새로운 경제주체 출현의 필요성을 전국민에게 알렸다는 점이다. 종래의 「재벌」이라는 경제성장 엔진에는 더이상 우리경제를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해줬다는 얘기다.
그후 발생한 대우사태는 IMF를 가져온 한보사태보다 규모나 파장이 컸는데도 의외로 평온하게 지나갔다. 한번 당한 정부당국의 발빠른 대응노력이 한몫했겠지만 이보다는 벤처의 힘이 컸다는 후문이다. 당시 경제주체인 재벌에게 날아갈 직격탄을 벤처가 분산 흡수했다는 분석이다. 벤처가 완충(버퍼) 역할을 함으로써 다시 한번 경제위기에 빠질 상황을 피해나갔다는 것이다.
벤처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끝간 데 모르는 호황으로 대변되는 신경제의 정점에도 벤처는 우뚝 서 있다. 흔히들 신경제의 근간은 디지털경제라고 규정한다. 이 디지털경제의 동력이 인터넷벤처임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제2의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디지털경제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강요한다. 디지털경제는 산업혁명 이후 굳어져온 규모의 경제 혹은 공급자 중심의 아날로그 경제체제를 급속히 무너뜨리면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무한한 시장과 새로운 경제질서를 창출해내고 있다.
인터넷을 근간으로 한 디지털 경제가 대세를 이룸에 따라 성공하는 기업과 실패하는 기업을 결정짓는 기준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한마디로 디지털 경제는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키는 기업을 요구한다. 소비자는 점점 더 변덕스러워지고 고급화된 욕구를 만족시켜줄 만한 개별화된 서비스와 재화를 공급받기를 원한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 더 먼저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더 먼저 만족시켜주는가 하는 「속도」의 문제와 어떤 기업이 소비자의 요구를 더 깊이 파악하고 숨겨진 욕구를 적절하게 끄집어내 개발해주느냐 하는 「창의성」이 기업 존망의 주요한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디지털경제는 이처럼 속도와 창의성이 관건이다. 창의와 속도는 벤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글로벌 경영능력과 능숙하고 노련한 관리노하우를 지닌 전통기업들이 디지털경제체제에 신속히 편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창의력이 떨어지고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초유의 인터넷혁명을 겪은 우리는 디지털경제체제에서 전통기업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반면 수많은 벤처들은 지난 1년 동안 지나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야기된 벤처거품론은 전통경제로의 복귀를 부르짖는 수구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뒷걸음질」 현상마저 일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모험기업인 벤처의 속성마저 부정하는 조짐까지 나타나 우려감을 더해준다. 벤처의 기본속성은 성공확률 10% 미만이다. 극성스러운 「묻지마」 투자가 벤처의 성공확률을 100%라고 맹목적으로 믿은 결과라면 현재 일고 있는 지나친 거품론은 벤처 성공확률을 0%라고 우기는 꼴이다.
그렇다면 전통경제의 주체들이 벤처를 대신해 과연 디지털경제의 주역을 맡을 수 있는 것인가. 대답은 「NO」다. 전통경제 주체들은 지금도 진보된 IT기술을 활용해 기존 체질을 강화하는 데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이들에게 IT기술 발전으로 생성되는 무한한 신시장을 개척하고 일구어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모험을 무릅쓰고 창의력과 속도를 무기로 하는 벤처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기업문화적 측면에서도 재벌위주의 전통기업으로 디지털경제를 대응하기는 어렵다. 디지털경제의 큰 특징으로 꼽히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상생주의와 나눔의 기업문화, 그리고 직원들의 경영참여에 따른 투명성확보 등은 벤처만이 가진 경쟁력이다. 조직을 중시하고 패권주의에 익숙한 기존 기업들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앞서 밝혔듯이 신경제의 근간은 디지털 경제이고 디지털경제의 동력은 벤처다. 이 등식이 가능한 것은 디지털경제가 기술력을 대변되는 IT와 아이디어와 마케팅이 중시된 사이버 시장이 결합해 새로운 유통혁명, 거래혁명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다가올 거래혁명, 즉 소비자 중심의 신경제에는 스피드와 창의성이 무기인 벤처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인터넷부 김경묵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