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터널을 겨우 빠져나오고 있는 한국경제가 또다시 금융대란이라는 예상치 못한 파도에 휩쓸려 좌초될 위기에 직면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금융권 총파업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은행 등 유관기관들은 금융시스템의 핵심인 전산시스템 장악에 나서는 한편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국민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의 중추인 전산시스템의 중단없는 가동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정부와 금융권·금융솔루션 업체의 움직임을 모아봤다.
◇정부·금융권
정부·금융권은 이번 파업으로 인한 금융전산시스템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만약 국가 금융전산망이 마비될 경우 초래될 파장과 후유증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감독원 비상상황반은 10일 오전 10시 현재까지 한미·하나·신한·제일·평화·수출입은행과 농협·수협·자산관리공사(KAMCO) 등 9개 금융기관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두세 기관이 추가로 파업불참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금융파업으로 인해 국민생활이나 금융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모든 부처가 철저히 준비하기로 했다』면서 『금융노조가 파업을 강행해도 분야별 대책이 이미 마련돼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 11일 금융 전산시스템이 전면 가동 중단되거나 일부 중단될 상황에 대비한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해놓고 있다.
정부와 은행이 고려하고 있는 대응책은 우선 퇴직 직원과 임시직, 계약직 간부사원 등을 총동원, 업무별로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업무 매뉴얼을 익히게 하는 등 파업시에도 영업을 계속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정부는 금융전산망이 국가 기간시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노조원이 전산시설을 불법 점거하거나 업무방해 행위를 할 경우 즉각 경찰력을 동원해 저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금융전산망이 은행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위한 필수적 핵심시설일 뿐만 아니라 국가 기간시설이므로 각 은행별 시스템운영 매뉴얼과 패스워드 확보, 핵심 전산요원과 대체인원 확보 등 자체비상계획을 수립, 시행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또한 금감원 검사역 44명을 각 은행 전산센터에 파견 상주하도록 하고 비상대비상황과 전산시설 보호조치 실행상황을 점검하도록 한 것을 비롯해 총 143명의 검사역을 각 금융기관에 투입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은행권 움직임-비노조원·자회사 인력 중심 전산망 가동
대부분의 은행은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정상영업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특히 이번 파업의 진원이자 금융산업노조가 공력을 들이고 있는 조흥·외환·한빛·서울 등 일부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과 지방은행의 경우 전산시스템 정상 가동 여부를 점치기 어려운 국면으로 사태가 치닫고 있어 해당 은행장들은 모든 임원·간부 사원을 24시간 비상대기시켜놓고 예상되는 전산시스템 가동 중단에 대비하고 있다.
여기에다 금융산업노조측이 전산노조원을 별도의 장소에 집합시키는 등 전산망의 비정상적인 가동을 통한 파업의 극대화를 기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이들 은행은 긴장감 속에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면서 정부와 노조측의 막판 대타협을 기대하고 있다.
노조가 파업 불참을 선언한 주택은행 등 일부 은행은 일단 안도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사태로 인한 전산망 가동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보고 전 임직원이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외환은행은 현재 전체 전산인력 270명의 3분의 2가 노조에 가입한 상태이나 대부분이 정상근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이 회사에 파견된 시스템통합(SI)업체의 인력 30명도 유사시 전산망 운용인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서울은행도 전산담당 노조원들이 파업에 가담할 경우 자회사인 서은시스템의 인력 60여명을 투입하고 이미 퇴직한 직원의 소재가 파악되는 대로 대체인력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최윤철 외환은행 정보시스템부장은 『정보시스템 부서는 법률적으로 쟁의대상 부서가 아니며 금융전산망은 국가산업의 중추신경이나 다름없다』며 『일부 영업부서나 지점에서 파업에 참여할지는 모르나 전산실 인력만은 파업에 가담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국민은행 전산시스템의 정상가동을 위해 전산인력의 파업불참을 적극 유도하고 있으며 전산자회사인 국민데이타시스템·서은시스템 등 금융SI 업체들의 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한국IBM·한국유니시스 등 정보시스템 업체의 지원인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파업에 따른 전산망 중단사태에 대한 우려는 「우려」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IT기업 움직임-정부요청시 인력파견 적극 검토
한국IBM·한국유니시스 등 은행권 정보시스템 운용·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이번 파업사태가 몰고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 외국계 IT업체는 이번 파업으로 전산금융망 가동이 어려워져 정부가 인력파견을 요청할 경우 인력지원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이번 파업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전산담당 노조원의 파업참여 인원이 많고 적음을 떠나 전산망 정상운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데다 전산업무의 특성상 어느 한 핵심인력이 자리를 비우거나 비정상적인 작동을 할 경우 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은행 전산 시스템과 솔루션을 공급한 바 있는 자사의 전산 전문가들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한국유니시스는 조흥·주택·신한 등에 30여명의 전문인력을 파견, 시스템 운용·유지보수 업무를 지원토록 하고 있으며 한국IBM도 상당수 전문인력을 자사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은행에 파견·근무토록 하고 있다. 특히 이들 두 회사는 이번 금융권 전산 시스템 중단 여부가 향후 전산시스템 판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정부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할 태세다.
한편 외국계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보시스템 공급업체의 경우 기계적인 시스템운용 인력이 대부분이어서 기계적인 업무 지원은 가능할 것』이라며 『그러나 은행업무 성격을 모르기 때문에 기계적인 업무 이외의 일을 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증권 등 여타 금융권 움직임
증권거래소·코스닥증권시장·증권예탁원 및 증권업협회는 10일 은행이 파업을 해도 증권시장은 정상적으로 개장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밝혔다.
증권업계는 은행권의 파업이 있을 경우에도 자체적으로 증권시장의 결제이행을 위한 충분한 대책이 마련돼 있고 금융결제원의 결제시스템과 은행전산망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어서 증시에서 매매거래를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만일 자금흐름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 단계별 조치도 준비했다. 우선 증권회사가 자체 준비한 자금으로 결제하고 부족할 경우에는 증권금융으로부터 결제자금을 대출받으며 거래소시장의 경우 거래소가 「위약손해배상공동기금」을 사용해서라도 결제이행을 보장하기로 했다.
증권업계는 또 투자자들도 가급적 현금조달이 가능한 범위에서 매매해 결제불이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
◇은행 파업 대처 방안
사상 초유의 은행권 총파업이 예상됨에 따라 기업과 개인은 은행 거래에 비상이 걸렸다. 은행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기업과 개인은 금융 거래상에 상당한 지장을 받을 것으로 점쳐지며 일부 기업과 국민은 예기치 못한 금융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금융 대란을 앞두고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일반 국민과 기업의 대처 요령을 정리해본다.
◇기업 대처 요령
정부는 은행 파업으로 기업의 자금 유동성에 차질을 빚을 경우 한국은행을 통해 긴급 자금을 지원하고 만기 대출금의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고 연체료를 면제해주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또 인력 부족으로 은행 점포가 통합 운영될 때는 타행 거래에 부과되는 수수료를 면제하는 방안 도입도 고려하고 있다.
은행권은 파업 불참 은행이 기업의 회사채나 CP의 차환자금 지원, 진성어음 할인 등을 대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은행 업무가 이뤄진다 해도 대체 인력의 업무처리 능력 미비로 처리시간이 연장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 기업은 외환 등 신용과 직결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기업은 사전에 거래처에 양해를 구해둬야 한다.
또 최소한의 유동자금은 미리 확보해두는 편이 안전하며 거래 자체가 끊길 확률은 거의 없다 하더라도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놓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개인 대처 요령
개인이 상품을 구입할 때 대금은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은행 파업과 무관하게 신용카드 업체는 영업을 계속하므로 상품 구입에는 큰 문제가 없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상품구매나 신용카드가 없는 개인의 경우 각 은행의 현금자동지급기(ATM)를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ATM의 현금 충원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가능한 한 오전에 필요한 현금을 인출해야 한다.
은행 점포에 따라서는 인력 부족으로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등 정상영업이 불가능할 수도 있으므로 우체국·농협 등 파업에 불참하는 금융기관의 점포가 주변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점포를 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공과금 납부와 같은 간단한 은행 업무는 LG25·세븐일레븐·훼미리마트 등의 편의점을 이용하면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한빛은행의 한 관계자는 『개인은 폰뱅킹이나 인터넷뱅킹 등 직접 은행에 나오지 않아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경로를 이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