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재발견>4회-해외현황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가 추정한 지난해 전세계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규모는 전년도에 비해 18.8% 성장한 262억달러다.

메모리반도체, 광학반도체 등에 이어 세번째 시장이다. 결코 지나쳐버릴 수 없는 큰 시장이다.

이 시장을 세계 90여개 업체가 나눠갖고 있으나 한국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필립스·인피니온테크놀로지스·내셔널세미컨덕터(NS)·아날로그디바이스(ADI)·온세미컨덕터(구 모토로라 아날로그 부문) 등 7개사가 세계시장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공급한다. 표1

모두 선진국 업체들이다. 이들 업체는 전통적인 아날로그 제품을 비롯해 통신·가전·자동차 등의 특정 애플리케이션 제품 시장을 두 축으로 세계 시장을 요리한다.

이들 업체가 포진한 미국·일본·유럽계 업체는 지난해 14∼26%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아시아·태평양 지역 업체들은 오히려 7%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선진국 업체들이 될 수 있으면 「영양가 높은」 분야에 집중하려는 전략을 감안할 때 이러한 결과는 아날로그 기술이 단순 저급기술이라는 일반인의 인식이 그릇된 것임을 일깨워준다.

인텔에 이어 세계 반도체업계 4위인 TI가 아날로그 분야에서 부동의 1위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TI는 전압 레귤레이터를 포함한 범용 아날로그 제품에서 전통적으로 강세이며 이를 통해 확보한 아날로그와 디지털 신기술을 접목해 세계 디지털신호처리기(DSP) 시장을 이끌고 있다.

TI는 전체 25개 디자인센터 가운데 아날로그만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를 미국·유럽·인도 3곳에 두고 있으며 현장에서 바로 회로 설계가 가능한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끊임없이 양성한다.

투자도 아날로그 기술에 우선한다. 이 회사는 고성능 아날로그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최근 이 분야의 최고 기술력을 갖춘 버브라운을 76억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합병하기도 했다.

손영석 TI코리아 사장은 『시장상황에 따라 성장세가 크게 좌우되는 메모리 등에 비해 아날로그산업은 안정적이고 이익율도 좋다』며 『TI는 아날로그와 이에 기반한 DSP에서 전문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증폭기(Amp) 시장에 특히 강한 NS도 대표적인 아날로그 전문기업이다.

NS는 아날로그와 정보가전(IA)을 주력으로 하며 매출기준 사업비중으로 볼 때 약 70%를 아날로그에서 거둬들인다.

구재금 NS코리아 상무는 『NS가 보유한 20여개의 디자인연구소 가운데 15개 정도가 아날로그 관련』이라며 『분기별로 신기술, 신제품에 대한 국제비즈니스리뷰(IBR)를 열어 기술과 시장 변동에 대응한다』고 말한다.

NS는 또 하나의 칩에 여러개 반도체를 집약하는 미래형 반도체인 시스템온칩(SOC)을 비전으로 설정,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혼합(믹스드시그널)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ADI는 디지털캠코더·디지털카메라 등 고속, 고해상도가 필요한 고성능 아날로그 제품시장의 강자다.

ADI코리아의 전고영 사장은 『ADI는 지난해 전체매출의 18%에 달하는 2억5600만달러, 올해는 3억7500만달러를 연구·개발에 할당했으며 미국 내 아날로그 전문대학에 지속적으로 지원한다』고 소개했다.

모토로라에서 분사한 온세미컨덕터도 아날로그만으로 「큰 소리 치는」 기업이다.

온세미는 모토로라 분사 이후 불과 수개월 만인 지난 4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으며 최근에는 전력관리 및 자동차용 아날로그 제품을 강화하기 위해 체리사를 인수·합병했다.

마이클 로레더 온세미 부사장은 『이번 인수는 체리의 아날로그 전문인력 55명을 보고 한 것』이라며 『온세미는 연간 500여개의 신제품을 만들며 원동력은 아날로그 등 신제품 착수팀』이라고 설명했다.

온세미는 모토로라 시절 연간 4000만달러 미만이던 연구·개발 투자를 내년에 1억달러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전세계적으로도 아날로그 관련 기술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라는 로레더 부사장의 말처럼 해외업체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으나 이를 푸는 방법에서는 강력한 투자라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