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벤처인이 보는 대덕밸리, 어떻게 키워야 하나
벤처와 코스닥에 대한 열풍이 한풀 꺾였다. 이와 함께 인터넷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벤처는 수익모델에 의심을 받고 코스닥 등록기업도 옥석 가리기가 한창이다. 전자신문은 우리나라 벤처 산실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대덕밸리의 현주소와 향후 발전방향을 점검해 보고 출연연과의 협력방안을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사회 : 김광호 전자통신연구원 벤처산업기술부장
△참석자 : 이경수 지니텍 사장, 남승엽 일류기술 사장, 임채환 블루코드테크놀로지 사장, 박중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중소기업기술진흥본부장, 김종득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기술창업단장, 이택구 대전시청 기업지원과장
△장소 : 연구개발정보센터 세미나실
△사회=IMF 경제위기 이후 벤처기업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벤처와 출연연구원과의 관계와 벤처산업의 현 상황을 진단해 보도록 하죠.
△박중무 본부장=유망 중소·벤처기업은 코스닥시장의 활성화로 중견기업화하고 있습니다. IMF 경제위기 1∼2년 전에 설립된 벤처기업들 중 코스닥 등록기업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후 벤처 중흥기를 맞아 기업수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코스닥 거품론과 벤처기업의 옥석 가리기가 한창 진행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 수익모델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죠. 한편 기술집약형 벤처기업이 대덕벤처밸리를 중심으로 육성되면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창업보육벤처들과 생명공학 기업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 기업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가 큰 숙제입니다.
△김종득 신기단장=소위 잘 나간다는 벤처기업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일부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죠. 또 85∼90년 사이에 창업한 학생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생들이 창업과 벤처성장에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생력을 갖춘 벤처기업의 육성에 주력했습니다.
△임채환 사장=90년대 초 벤처캐피털사는 10개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투자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돼 있었단 얘기입니다. 자금확보가 너무 힘들고 투자자들의 벤처투자가 소극적이었던 것이죠. IMF 경제위기 이후 갑작스럽게 코스닥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코스닥에 등록하면 떼돈을 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또 코스닥 성장을 계기로 벤처캐피털이 무섭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벤처기업 수익모델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코스닥 열풍이 식으면서 벤처의 옥석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사회=대덕밸리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경수 사장=벤처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와 가장 유사한 벤처집적지는 역시 대덕밸리라고 생각됩니다. 성장가능성이 무한한 단지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대덕은 기업협동을 위한 자체 인프라가 부족합니다. 또 하나 유의할 것은 소위 최고경영자(CEO)들의 역할입니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는 대부분 CEO와 CFO를 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덕밸리 창업자는 CMO, CEO, CFO, CTO 등 다중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분석해 그 곳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종득=테헤란밸리와 대덕밸리는 확실히 다릅니다. 대덕은 제품개발 단계에 있는 기
업이 많고 테헤란에는 대전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자금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본이 중심이 돼 첨단기술과 아이디어를 유인하는 형태로 테헤란밸리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대덕은 자본의 흐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벤처성장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또 대전시도 지방정부 차원의 벤처 인프라 구축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남승엽 사장=대덕 벤처기업들은 자신의 기술력을 냉철히 분석하고 이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기술이 세계 최고의 기술인 줄 착각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정보교류의 부족인지는 몰라도 일부 벤처기업은 자신들의 기술을 과신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중무=문제는 대덕밸리 기업들이 시장을 보고 벤처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직 기술만을 생각하고 창업하고 있는 실정이죠. 대덕밸리의 특성을 잘 파악해 이에 맞는 벤처모델이 생겨야 합니다. 또 마케팅과 경영마인드가 부족한 기업은 이 분야 전문가를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합니다. 특히 벤처단지(벤처집적시설)내에 경영과 마케팅을 도와줄 수 있는 전문컨설팅 회사를 갖추는 방법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종득=벤처기업은 회사를 키워가면서 나름의 회사 이미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벤처경기가 상승세에 있을 때 회사모양이 대외적으로 비쳐지는 모습에 각별히 신경써야 합니다. 또한 사이언스파크나 협동화단지 등 벤처집적시설은 꼭 필요합니다.
△사회=이제 출연연과 벤처의 협력방안에 대해 얘기해보죠.
△임채환=기업부설연구소는 회사의 미래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80년대 각 기업 연구소장의 수명은 짧은 편이었습니다. 예컨대 경영자는 부설연구소가 3년 정도의 단기간에 무엇인가 성과를 내놓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기업연구소의 환경을 고려해 보면 무리한 요구입니다. 대기업은 오너가 연구아이템을 결정하고 있어 연구원 나름의 연구주제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로 인해 첨단기술 창출 등 연구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죠. 국가 연구기관에서 스핀 오프(spin off)한 기업들은 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기술에만 전념해 수익모델이 불투명한 실정입니다.
△김종득=대덕밸리는 벤처기업들이 이용 가능한 국책 연구기관이 많습니다. 정부출연연 스핀 오프 기업은 기술과 인력에 강점이 있는 반면 벤처기업간의 교류가 부족합니다. 서로 상대 기업에 벽을 쌓고 정보교류에 무관심하죠. 대덕연구단지내 연구시설을 벤처기업인이 직접 활용하는 일은 너무 힘이 듭니다. 정보교류를 위한 일종의 벤처컨소시엄을 구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채환=출연연과 벤처기업인의 교류와 양측의 인프라 공유를 서둘러야 합니다.
△김종득=출연연 운영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출연연구소는 계약연구 위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벤처기업은 자금이 부족한데 주식을 보상으로 출연연
에 연구의뢰를 하고 싶어도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습니다.
△남승엽=출연연구소는 정부가 제시하는 연구주제에 너무 얽매여 있는 느낌입니다. 연구자 스스로 연구주제를 판단해 다양한 연구가 활성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정부차원에서 특허법 개선노력이 필요합니다.
△박중무=솔직히 말해 출연연의 스핀 오프 기업이 너무 많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과 연관된 아주 민감한 부분이지만 이로 인해 국책 출연연 체제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스핀 오프 기업가는 기존 연구원과의 활발한 정보교류에 신경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신기술 정보와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또 현재 정통부와 출연연은 상당수 연구과제를 공동수행하고 있습니다. 양 부처의 공동연구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작은 기술이라도 연구원 내부에서 교류할 수 있는 조직적인 프로그램과 마스터플랜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연구원 조직의 경직성을 풀어야 합니다.
△이경수=출연연의 고민은 우선 인력유출에 있다고 봅니다. 스핀오프 기업은 단순히 기술만을 생각해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나갑니다. 출연연의 기술력을 상용화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있게 논의돼야 합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출연연의 규모 축소인데 지금까지 출연연은 계속적으로 규모를 줄여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비는 증가하고 있어 딜레마가 분명합니다. 벤처는 기술과 정보를 계속적으로 공급받아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벤처의 현실을 출연연구원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허실을 연구원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합니다. 또 출연연의 연구비 책정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선행연구와 대형 프로젝트는 국가에서 시행하고, 상용 연구는 산업계가 맡아야 모양세가 좋습니다. 수익만을 위한 연구는 출연연 본래의 역할이 아닙니다.
△사회=그러면 정부와 대덕밸리의 공동협력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해 보죠.
△남승엽=정부가 벤처를 너무 획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봅니다. 초기 벤처기반을 조성하는 데 정부가 큰 일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코스닥 거품론이 확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벤처도 시장원리에 맡겨 경쟁력을 상실한 벤처는 퇴출돼야 합니다. 시장원리에 예외란 없습니다. 정부와 산업계는 단계적으로 벤처 규제 완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김종득=내 생각은 좀 다릅니다. 창업을 장려하고 연구원들을 계속 육성해야 하며 벤처기업의 수익을 출연연과 공유하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초기를 제외하고 정부가 벤처에 도움을 준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스닥 열풍에 불을 지핀 것은 정부지만 그 이후 벤처는 시장이 키워왔습니다. 그리고 코스닥은 벤처정신을 말소하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정부의 제도개선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택구=대덕밸리에 대한 용어 자체가 우선 확실하게 정의돼야 합니다. 「어디까지를 대덕밸리로 볼 것인가.」 통일적인 것이 없습니다. 과기부는 대덕연구단지만을 보고 있으나 대전시에서는 실제 대덕밸리를 연구소를 중심으로 주변의 3·4공단, 집적단지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벤처밸리가 들어서면 모두 실리콘밸리가 되는 줄 알고 있는 듯합니다. 대덕밸리의 발전은 정부의 생각과 달리 자생적인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벤처타운을 짓고 또 바꾸고 하는 부분이나 밀어붙이기식으로 밸리를 조성하는 것은 빨리 시정돼야 합니다. 정부는 단지조성만 하고 이후 대책은 무관심합니다.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범위와 지원원칙이 먼저 정립돼야 하고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역할분담도 재고할 부분이 많습니다.
△박중무=대덕밸리는 연구소라는 토대 위에 벤처기업들이 들어선 상태입니다. 이것이 다른 벤처밸리와 다른 대덕만의 특징입니다. 우선 신생벤처들은 자가생산공장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기존 제조업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고 연구소 벤처나 하이테크형 벤처들은 대전시의 지원이 요구됩니다. 만약 이들 벤처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 대전시의 수익은 떨어지는 만큼 대전시 자체가 대덕단지를 이용해 영업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택구=대전을 떠나는 업체가 이슈화되고 시장도 이것을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벤처 입장에서는 대덕이 불리하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전시가 나름대로 그 원인을 파악한 결과 가장 큰 장애는 입지공간 부족, 즉 보육단계에서 공간과 입지부족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벤처붐 이전에는 인큐베이터가 수십개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20개 기관, 500개가 넘습니다.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정부는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경쟁력을 상실한 업체가 자연 도태되지 않아 벤처기업의 입지공간 부족을 대전시가 떠안게 됐습니다. 그동안 다른 시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벤처집적시설을 만들어 나가고 있고 벤처빌딩 수요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근 오피스텔 20층짜리가 벤처빌딩으로 전환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벤처빌딩에 입주하지 못하는 업체들은 협동화사업 등으로 들어가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종득=벤처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원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대전에는 겨우 3개의 벤처캐피털밖에 없습니다. 대전시는 벤처캐피털 지점 유치를 서둘러 대전내에서 자금이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또 벤처기업의 내부자금을 살펴볼 회계사 영입이 안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전시도 회계법률사무소 등을 유치하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이와 함께 벤처지원이 가능한 중견기업들을 대전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보여야 합니다. 특허사무소도 5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경쟁력있는 특허사무소는 없습니다.
△이택구=작년까지도 자금은 투자가 아니라 정책자금 융자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투자관심이 높아지면서 공공펀드를 결성하고 서울 엔젤과 연계된 엔젤마트를 열어 지금까지 43억원의 자금확보를 예상했으나 KTB네트워크에 알아보니 3개 업체 모두 심의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대덕밸리가 요구하는 자금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벤처는 결코 자신들의 요구수준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엔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는 캐피털사의 기술이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금에 대한 부분은 지역엔젤이나 산은캐피털 등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종득=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의 자금회전율은 110일입니다. 벤처가 이 기간안에 수익모델을 창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덕밸리는 최소 3년 이상의 장기적 투자를 생각해야 하는데 벤처캐피털은 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벤처캐피털은 1년 이내 수익모델을 보여주지 않으면 투자를 기피합니다. 진정 벤처를 이해할 수 있는 투자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벤처캐피털과 벤처기업의 상호이해가 부족한 부분입니다.
△임채환=벤처캐피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수익이 확실한 모델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대덕밸리는 하드웨어가 구축된 소프트웨어 전문단지입니다. 벤처기업가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부분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영업·연구·생산·마케팅 등의 전문업체가 조인트 벤처를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경수=벤처기업들은 오직 기술만을 생각하다보니 마케팅과 세일즈의 차이를 모릅니다. 해외마케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최고의 사람들을 해외에 보내야 합니다. 또 해외 마켓네트워크를 벤처와 연결시켜 줘야 합니다. 이밖에 시장 진입문제는 자신의 목표와 부합하는 팀과 파트너십을 결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민·산·학·관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합니다.
△남승엽=중요한 것은 벤처기업 사장들의 의식입니다. 혼자서 다 하겠다는 자세는 좋지 않고 외부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것이 결국 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철저한 자기분석이 돼있을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벤처기업 대표는 자신의 기술력과 장점을 중구난방식으로 홍보하지 말고 핵심기술만을 집중적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택구=마케팅과 관련해 대전시는 통역 등 소극적 지원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또 대다수의 벤처가 물건만을 만들어 놓고 팔리기를 기다립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팔릴만한 물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시장의 흐름을 놓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리=장관진기자 bbory5@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