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덕밸리 3회>인터뷰-전화성 SL2 사장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가 「윈도」로 세계를 제패했듯이 저는 「음성인식기술」로 세계를 제패할 것입니다.』

대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기술창업지원단 소속 음성인식솔루션 전문 벤처기업인 SL2(http://www.slworld.co.kr)의 전화성 사장. 그의 꿈은 음성인식솔루션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 현재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인 L&H도 두려워 하지 않는 자신감이 그에겐 배어있다.

수학교사인 아버지와 의상디자이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전 사장은 76년생이다. 나이 탓인지 전문가 수준의 카레이싱 실력을 갖춘 스포츠광이며 힙합과 테크노를 즐겨추는 전형적인 N세대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는 매우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자 아주 잘 준비된 벤처기업가다.

고등학교(서울 광성고)를 졸업한 전 사장은 지난 95년 원광대 한의학과에 입학한다. 증조부 때까지 원래 한의학 집안인 탓에 부모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가 있었다. 그러나 한의학보다 컴퓨터에 더 관심이 많던 그는 부모 몰래 자퇴서를 제출하고 스스로 「재수」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는 그해 동국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 컴퓨터에 입문한 지 10년만에 컴퓨터공학도로 변신한 셈.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연히 부모들은 노발대발했고 스스로 집을 나와 버렸다(그는 이에 대해 가출이라는 말을 쓰기 싫어했다).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택하자 공부에 날로 재미가 붙었고 타고난 천재성과 끼를 발휘하던 그는 마침내 일을 내고 말았다.

남들은 8학기 이상이 걸리는 대학을 단 6학기만에 졸업한 것. 이는 국내 종합대학 사상 최초의 일이다. 거기에 차석졸업으로 총장상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라 6학기째 재학중이던 98년 8월에는 KAIST 전산학과 석사과정에도 합격했다. 「공부벌레」로 비춰지는 것이 싫었던지 동국대 재학중에는 카레이싱에 심취, 한국통신배 카레이싱대회에서 입상하는 「깜짝쇼」까지 연출했다.

짧은 대학생활이었지만 전 사장은 이때 그의 오랜 꿈이었던 창업을 현실화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전 사장은 어릴적부터 장래희망이 벤처기업 사장이었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실리콘밸리 소식을 접하면서부터는 정보기술(IT)과 벤처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구체적인 창업의 밑그림을 그린 것은 대학입학 후다.

『개인적으로 MS와 빌 게이츠를 벤처마킹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MS와 같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음성OS(운용체계)」란 콘셉트를 생각했습니다. 좀 막연했지만 말로 컴퓨터를 켜고 끄며 실행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전 사장의 이 같은 막연한 생각은 결국 그의 인생을 바꿔 놓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 KAIST 입학 후 음성언어연구실에서 음성인식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마침내 지난 3월 20일 차세대 핵심기술이라는 음성인식기술을 기반으로 한 SL2란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SL2란 SLL, 즉 음성언어연구소(Spoken Language Laboratory)의 이니셜.

초기 자본금이 법정 최저한도인 2000만원에 불과했지만 KAIST 학·석·박사 과정의 선후배, 친구들이 뜻을 같이 해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경험도 없고 해서 주위에선 우려도 했지만 우리팀이 갖고 있는 기술력과 잠재력을 믿었습니다.』 오랜 숙원을 푼 약관의 창업이었지만 전 사장은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시작했다고 말한다.

SL2는 설립과 동시에 국내 최초로 음성인식과 화자인식, 음성합성 등 한국어를 기반으로 하는 음성 제반기술을 자체 개발,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분석, 이를 글자로 출력하는 음성인식기술은 현재 동종업계 최고 수준인 10만 단어까지 가능하다. 음성인식기술의 잣대인 인식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SL2는 역사는 짧지만 기술력은 탁월하다는 점을 인정받으면서 요즘 SL2를 찾는 기업과 투자가들이 쇄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증권을 비롯, 엘테크놀로지·해동정보통신·한울로보틱스·클릭큐·GDS·나스카·지한정보통신 등과 업무제휴를 맺었다. 이유는 음성인식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서다.

음성인식기술 응용 분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SL2에 줄을 대기 위한 벤처캐피털도 줄을 잇고 있다. 오는 8∼9월께로 예정된 1차 펀딩에 참여를 원하는 벤처캐피털만도 10개를 넘고 있다고 한다. 벤처투자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지만 SL2의 프리미엄만은 이미 액면가의 수십배를 넘어섰다.

실적도 급증하기 시작, 단기간에 이미 고속성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사업개시 100일에 불과한 이달까지의 매출이 10억원을 넘어섰으며 연말까지는 50억원은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엔 120억원의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다국적 언어지원을 통해 해외시장 공략도 본격화, 브라질 모 은행과 수출을 적극 추진중이다. 올해 안으로는 중국, 일본, 싱가포르, 브라질, 미국 등에 조인트벤처를 설립할 계획이다.

전 사장은 어린 엔지니어 출신답지 않게 마케팅 면에서도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전 사장은 『독학으로 터득한 경영이론을 바탕으로 회사설립에서부터 모든 업무를 스스로 처리했다』고 한다. 최근엔 CEO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연구개발(R&D) 부문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앞으로 회사가 궤도에 오르면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더 공부할 작정이다.

전 사장은 또 이미 남다른 경영철학까지 정립해 놓았다. 장차 SL2를 세계적인 음성인식합성 전문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다. 『기업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성원들 개개인이 프로마인드를 갖고 자율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습니다.』 신세대 예비 벤처스타가 말하는 기업문화는 「자율」에 근거한다.

『세계 음성인식시장은 앞으로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시장 규모만도 내년에 100억달러를 돌파하고 2002년 200억달러, 2003년이면 3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따라 이 시장을 석권하는 업체가 IT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것입니다.』

전 사장은 『아마도 2000년대 중반께면 MS와 같은 공룡기업이 음석인식 분야에서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며 『우리나라라고 MS와 같은 업체를 만들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반문한다. 뉴밀레니엄 벤처스타를 꿈꾸는 N세대 CEO의 야망은 이처럼 거침이 없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음성인식 합성기술에 관한 한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기술력과 맨파워에 대한 자신감이 숨어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