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소(소장 장인순)가 120억원에 달하는 경수로 안전장치 건설을 발주하면서 과학기술부의 보류 지시를 무시한 채 입찰을 강행해 물의를 빚고 있다.
20일 관련기관에 따르면 과기부는 원자력연구소 열수력안전연구팀이 추진하는 「가압경수로 열유동 종합시험장치 건설사업」과 관련, 지난 5월 과학기술평가원(KISTEP)을 통해 2000년도 과제평가시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실험장치의 규모, 세부활용계획에 대한 전문가의 추가 정밀검토가 필요하므로 실험장치의 제작에 필요한 직접비의 집행을 보류하라는 공문을 연구소에 보냈다. 그러나 원자력연구소는 이같은 과기부 지시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 한국중공업·한국전력기술 등 3개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을 실시, 현대건설을 사업자로 선정했다.
이처럼 원자력연구소 열수력안전연구팀이 과기부의 지시를 묵살한 채 사업을 추진한 사실이 밝혀지자 원자력연구소측은 자체 진상조사를 벌여 실무부서 관계자 3명을 보직해임하고 현대건설에 입찰 무효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원자력연측은 지난 5월 열린 과학기술평가원 전문가 회의에 과제 책임자인 열수력안전연구팀 정문기 박사를 참여시켰으며 정 박사가 별첨 회의안건으로 상정돼 있는 직접경비 집행 보류의 건이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행경비와 입찰를 별개사안으로 분리 인식,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2단계 경쟁입찰 방식의 제1차 평가인 기술평가는 입찰도 하기 전에 자체적인 심사기준에 따라 좌지우지될 충분한 소지를 안고 있었다. 우선 1차 기술평가를 위해 원자력연은 자체적으로 관련부서 3곳의 전문가 8명이 참여하는 기술평가위원회를 열어 입찰서류를 제출한 3개 업체를 대상으로 기술과 인력지원 능력 등을 종합 평가, 커트라인인 80점을 넘긴 현대건설에만 2단계 가격입찰에 응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입찰응모에 떨어진 한국중공업과 한국전력기술의 평가내용을 보면 제출서류의 무성의와 기술미흡이 골자다. 그러나 한국중공업은 원자로 제작경험이 풍부하고 한국전력기술은 설계분야에 독점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건설은 건설분야에 관한 한 국내 최고수준이다.
2단계 가격입찰에 떨어진 업체들은 급기야 감사원에 진정서를 제출, 감사원이 이를 바탕으로 감사에 돌입하는 사태로 발전한 것.
또 이번 사태수습 과정에서 원자력연이 보여준 태도도 사건을 축소 내지 은폐하려는 의혹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우선 과제책임자인 열수력안전연구팀 정문기 박사와 구매과장 등 관련자 3명을 보직해임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으며 이번 사태의 촉발점인 과기부 지시 묵살건에 대해서도 어떠한 해명 없이 쉬쉬했다는 점, 또 입찰당사자인 현대건설측이 사태가 불거지자 갑작스레 입찰취소 수용의사를 밝힌 사실 등이다.
원자력연은 항간에 떠도는 리베이트설 등은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라며 『내부 징계는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물의를 빚어 기관장 차원에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우기 위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