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북한철학
선우현 지음
6·15정상회담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던 가장 큰 논제는 역시 남북통합(통일)에 관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남과 북이 영토상 또는 제도적 차원의 통합이 이루어진다 해도 사회성원간의 사상적 통합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통일은 형식상의 사회적 통합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그런 통합은 진정한 의미의 민족통일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통합을 논의하고 그것을 완수해 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중요한 문제로 인식해야 할 과제가 바로 사상적 통합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반세기 이상 단절된 채 상호 적대적이고 이질적인 체제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북한 사회의 본성과 구성원들의 사유방식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해하는 작업을 통해 사상적 차이를 좁히고 최소화함으로써 동질성과 유대감을 확보해 가야 할 때인 것이다. 주체사상을 비롯한 북한의 정치철학과 사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올바른 이해가 요구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오늘날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통치이념의 수준을 넘어 인민들의 삶의 실천원리이자 행위규범의 척도로 자리잡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적용범위도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정치와 사상 철학으로서 주체사상은 황장엽이 그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이후 현재는 두 방향으로 나뉘어 발전하고 있다. 그 하나는 1인 지배체제를 합리화하는 북한 집권층의 통치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이며, 다른 하나는 황장엽의 독창적 철학체계로 평가받고 있는 이른바 「인간중심철학」이다.
통치이념으로서 주체사상은 북한체제의 생존전략 및 북한식 사회주주의 건설논리로서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해주는 국가철학이다. 70년대부터는 자립적 민족주의 경제의 구현을 위한 인민대중의 자발적 희생과 헌신을 이끌어내는 동원 이데올로기이자 수령절대주의를 확립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통치이념으로서 주체사상은 일반적으로 큰 의미의 것과 작은 의미의 것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큰 의미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불리는 것으로 김정일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에서는 『김일성 동지의 사상·리론·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한 주체사상이 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종언을 고하면서 동시에 김일성주의의 선언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은 의미의 주체사상은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적 원리, 지도적 원리 등으로 구성된 김일성주의의 전반적인 이론체계다. 그러니까 큰 의미의 주체사상은 좁은 의미의 주체사상과 그것에 기초한 이론 및 방법으로 돼 있는 셈이다
한편 인간중심철학은 인간이 실천적 활동의 주체가 되어 인간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왜곡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적 기획이론으로 볼 수 있다. 그 궁극적 목표는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는 사회의 건설이다. 계급주의를 배타하는 인본주의 철학으로서 특징도 내포하고 있다. 인간중심철학은 따라서 하나의 보완적 또는 대안적 사회모델에 대한 풍부한 논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계에 긍정적 검토의 여지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철학의 최고 성과물로 평가받고 있는 인간중심철학은 그러나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주체사상과 달리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채 현재는 이론적 체계로만 남게 됐다.
이 시점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분석과 이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바로 남북한의 사상적 차이와 대립을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작업임과 동시에 사상적 공통성과 통합의 접합점을 찾아내 주는 일이다. 나아가 남북통합의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측면과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무엇인가를 구분해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일이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