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팩컴퓨터가 현대멀티캡과 공동브랜드 PC 개발로 국내 가정용 PC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국내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세계시장과 국내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두 회사의 협력으로 국내시장 구도가 완전 재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컴팩컴퓨터의 경우 세계 PC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컴퓨터특허권과 막대한 자금동원력을 확보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업체다. 이와 손잡는 현대멀티캡은 지난해 인터넷PC 1위, 매출성장률 1위, 수익률 1위를 달성해 국내 컴퓨터업계 5강에 속해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두 업체의 장점이 결합할 경우 국내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에 버금가는 강력한 도전자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배경
컴팩컴퓨터는 세계 1위라는 높은 브랜드이미지, 강력한 마케팅력 등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시아지역 최대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시장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이유는 AS체제, 대리점 위주의 유통 등 한국에서 갖고 있는 독특한 시장구조가 사실상 강력한 시장진입 장벽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IBM·델컴퓨터·NEC 등 세계 주요 PC업체들은 이에 따라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펼쳤다. 가정용 PC 시장공략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공급물량도 한해 3만대를 넘지 못했다.
컴팩컴퓨터를 포함한 외국 PC업체들의 공급물량을 합쳐도 국내 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외국업체들의 점유율은 5% 수준을 넘지 못했다.
컴팩컴퓨터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일찌감치 독자적인 가정용 PC시장 진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96년부터 현대전자·대우통신 등 국내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끊임없이 추진해왔다.
특히 이른 시간내 이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 올 들어 현대멀티캡을 포함해 엘렉스컴퓨터·성일컴퓨텍 등 중견업체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업무제휴에 나서 나름대로 인터넷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현대멀티캡을 최종 파트너로 선택했다.
◇제휴내용과 향후 전망
두 회사의 이번 제휴내용은 「컴팩 현대멀티캡」이라는 공동브랜드를 사용해 국내 가정용 데스크톱컴퓨터 시장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컴팩컴퓨터는 기술제공과 부품구매 업무를 맡는 대신 현대멀티캡은 안산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전국 350개 유통점을 활용해 제품을 판매하기로 했다. AS도 현대멀티캡이 전담하기로 했다.
컴팩컴퓨터로서는 그동안 국내시장 진출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한 전국 규모의 유통망과 AS체계는 물론 안정된 생산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며 노트북컴퓨터 발열문제 등으로 그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현대멀티캡은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에 밀렸던 품질과 브랜드이미지를 크게 높일 수 있게 됐다.
두 회사의 이번 제휴는 현재 공동브랜드 수준을 넘어 앞으로 LGIBM과 같은 합작법인 설립 등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한다.
이번 조인식에 참가한 알렉스 그루젠 컴팩컴퓨터 아시아태평양 지역부사장은 『컴팩컴퓨터와 현대멀티캡의 지분이나 상호투자 등에 대한 내용과 관련해서 현재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며 『그러나 향후 사업성과가 좋을 경우 상호 지분공유나 투자 또는 별도의 합작사 설립에 대해 폭넓은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합작법인 설립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최병진 현대멀티캡 사장도 『컴팩컴퓨터와 아직 구체적으로 합의한 내용은 없다』며 『하지만 두 회사가 장기적인 사업파트너로 인식한만큼 조만간 한단계 발전한 새로운 전략적 제휴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업계의 반응
우선 삼성전자·삼보컴퓨터 등 국내업체들은 이번 제휴에 대해 『공동 브랜드전략으로는 단기적으로 국내시장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앞으로 두 업체의 사업 시너지효과가 커질 경우 국내업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국내 PC시장은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시장지배력이 크다』며 『이미 LG전자와 IBM의 합작사인 LGIBM 사례에서 보듯 당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컴팩컴퓨터가 현대멀티캡과 공동으로 LGIBM과 같은 합작사를 설립하거나 현대멀티캡에 지분을 투자하는 형식으로 국내시장 공략전략을 바꿀 경우 기존 LGIBM을 능가하는 막강한 파워를 지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