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이제 그만.」
지난해 반도체 빅딜에 합의하고도 실제로는 갈등이 식지 않았던 현대와 LG가 최근 서로 협력의 손길을 내밀고 있어 새로운 밀월관계를 예고했다.
25일 현대전자와 LG전자가 체결한 전략적 제휴는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두 회사가 제휴를 통해 얻으려는 게 뭔지, 그 범위는 어디까지 확대될지, 두 회사의 행보에 반도체와 전자업계의 이목이 새삼 집중되고 있다.
◇ 제휴 의미와 내용=현대전자와 LG전자가 협력키로 한 것은 반도체의 수요·공급이다.
이날 체결된 계약에 따르면 현대전자는 마이콤, 주문형반도체(ASIC), 디지털신호처리기(DSP) 등 시스템IC와 64MD램 등 반도체 전반을 망라해 LG전자의 주문에 최우선으로 공급키로 돼있다.
두 회사는 구체적인 공급물량을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소요물량의 절반 정도에 이를 것으로 본다. LG전자가 구 LG반도체로부터 받았던 물량과 외국 반도체업체와의 신규거래 등 달라진 환경으로 미뤄 내놓은 추정치다.
두 회사는 단순한 제품공급을 넘어 특히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도 적극 협력키로 했다.
그룹의 반도체사업 포기로 반도체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LG로선 반도체업체와의 협력이 절실하다. 외국 반도체업체와 협력중이나 자칫 기술정보의 유출이 걱정된다.
더욱이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에는 반도체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때문에 LG전자는 국내 반도체업체와의 협력을 모색해 왔으며 이번에 현대전자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특히 현대전자는 삼성전자와 달리 시스템사업을 직접 하지 않기 때문에 LG전자로선 현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전자로서도 반도체기술에서 일가견이 있는 LG전자와 협력함으로써 반도체 빅딜 이후 일부 핵심 인력의 이탈로 공백이 생겼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 전망=LG가 당장 반도체사업을 재개할 수 없게 되면서 LG전자와 현대전자는 언젠가 협력할 것이라고 예상돼 왔다. 다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 시점이 예상보다 빨리 왔다. 이는 곧 두 회사의 협력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것과 아울러 두 회사의 제휴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임을 예고한다.
LG전자는 반도체공장을 갖지 않은 이른바 팹리스(fabless)이며 현대전자는 사실상 시스템사업을 펼치지 않는 반도체 전문업체다.
두 회사의 협력은 곧바로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LG전자로선 이번 현대전자와의 제휴로 구매처를 다양화해 시스템사업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해외고객에 의존해온 현대전자는 LG전자라는 국내 대형 시스템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해 반도체사업에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LG가 반도체사업을 재개하거나 현대가 시스템사업을 대폭 확대하지 않는 한 두 회사의 제휴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두 회사는 계약기간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으나 통상적인 시스템업체와 반도체업체의 계약기간에 비춰 3년 이상의 장기 계약일 것으로 추측됐다.
당분간 두 회사의 제휴는 LG전자의 디지털 전자제품용 반도체 공급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나 협력 성과에 따라서는 통신칩, LCD드라이버IC, 플래시메모리 등 다른 분야로 제휴범위가 커질 전망이다.
두 회사의 협력에도 당장 큰 장애물은 없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LG전자 엔지니어들은 현대에 머문 기존 LG반도체 엔지니어들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터라 공동개발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현대전자와 LG전자는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반도체는 물론 시스템의 기술과 시장정보를 정기적으로 교류할 계획이다.
현대와 LG가 이처럼 손을 맞잡고 나서자 자못 긴장하는 것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시스템과 반도체사업을 동시에 병행해오면서 두 분야 모두 LG전자와 현대전자에 비해 우위를 점해왔는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스템시장에서는 삼성-LG가, 반도체시장에서는 삼성-현대로 각각 양분됐던 시장경쟁구도는 앞으로 시스템과 반도체를 망라해 삼성-LG·현대의 양자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같은 전망은 LG와 현대의 밀접한 협력관계를 전제로 한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