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공급전략이 크게 바뀌면서 국내 PC업계가 사업추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통 분기별로 1개의 셀러론이나 펜티엄Ⅲ급 CPU 신제품을 발표했으나 최근 매월 또는 한달에 두번 꼴로 신제품 발표주기를 크게 앞당겼으며 제품 발표시기도 종전과 달리 제품양산에 들어가기 전에 잡고 있다.
PC업체들이 인텔의 잦은 CPU 신제품 발표에 대해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은 인텔이 뚜렷한 기술진보를 바탕으로 한 신개념의 제품을 발표하기보다는 지난해말 이후 AMD 등 경쟁사를 의식, 클록속도를 세분화해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이 발표한 펜티엄Ⅲ 500급 CPU 등장 이후 발표된 펜티엄Ⅲ CPU의 클록속도별 제품은 500·533·550·600·650·667·700·733·750·800 등 무려 10개에 이르고 있다. 예전 같으면 중간단계의 클록속도가 대거 생략됐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삼성전자·삼보컴퓨터·LGIBM·대우통신 등 국내 PC업체들은 이에 따라 마케팅 혼선은 물론 재고부담 증가, 업그레이드 부담, CPU 수급 불균형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인텔에 의지하고 있는 업계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내 PC업체들은 최신 클록속도를 지닌 CPU를 탑재한 컴퓨터에 대해 최고급 사양이라고 발표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신제품을 내놓아야 하는 개발부담이 있으며 이에 따라 집중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PC업체들의 최근 브랜드이미지 전략이 기존 「사양」중심에서 「시리즈」로 명명되는 가격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CPU 신제품 발표시기가 빠를수록 PC업계의 재고부담도 커지고 있다.
최신 클록속도의 CPU가 시장에 선보이면 기존 제품가격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텔도 최근 클록속도별로 다양한 CPU를 발표하면서 그때마다 기존 제품에 대해 큰폭의 가격인하를 발표해왔다. 최신 CPU를 탑재한 컴퓨터를 제때 판매하지 못해 큰 손실을 입고 있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관련업계에서는 『국내 PC시장에 재고물량을 줄이기 위한 밀어내기 판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인텔이 CPU 공급전략에 따라 PC업계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양산체제를 갖추기 이전에 신제품을 발표하는 것이다. PC업계는 일단 제품발표 후 양산이 원활하지 않거나 올해초 발생한 멕시코공장 화재에서 보듯 인텔의 공장문제 등으로 공급난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입장이다.
PC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PC의 광고내용을 담은 팸플릿의 경우 제작이 끝나 배포할 때쯤이면 광고내용에 등장하는 제품이 구형으로 전락할만큼 CPU 클록속도가 세분화돼 발표되고 있다』며 마케팅과 홍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PC업계에서는 CPU의 잦은 발표로 가격하락폭이 커지고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며 『이에 따른 재고부담을 줄이기 위해 예측된 수요량의 10% 가량 모자라게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 관계자는 이에 대해 『CPU의 클록속도별 신제품을 크게 늘린 것은 PC업체에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