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실험의 영향으로 고대생물이 변이를 일으켜 태어난 괴수, 고질라의 23번째 이야기.
「고질라」는 지난 54년 탄생된 이후, 전세계적으로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괴수다. 원폭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감과 맞물려 영화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던 「고질라」는 이제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되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이 모티브를 이어받아 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된 「고질라」가 탄생되기도 했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덜 세련되고 엉성함마저 눈에 띄는 일본의 오리지널 고질라에 대해 더한 애정과 찬사를 보냈다. 그 힘은 잘난척하지 않고 B급 영화답게 풀어가는 이야기 구조와 괴수에 대한 접근방식에 있다. 특수효과 대신 고무 옷을 입고 인간이 연기하는 괴수 고질라의 아날로그적 외모와 연기는 「고질라2000」에서도 변화될 수 없는 철칙이지만, 캐릭터에 대한 콘셉트는 기존에 드러난 「단순한 인류의 위협자」에서 벗어나 있다. 환경문제를 논하는 주제나 특수효과 역시 할리우드 영화에 한 발짝 다가선 모습을 읽게 하는 부분이다.
고질라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대결구도는 이제 지구를 위협하는 정체모를 외계물체로 옮겨간다. 「고질라2000」으로 4편째 고질라 시리즈를 만들게 된 오가와라 다카오 감독은 규모와 CG, 특수효과 면에서 한층 진보된 블록버스터 영화를 선언한다.
기자인 유키는 고질라 연구소의 시노다 박사와 그의 연구 파트너인 어린 딸 이오를 쫓아 고질라를 추적해 간다. 어느 날 바다로부터 고질라가 육지로 상륙하고 인간의 과학문명을 심판이라도 하려는 듯 발전소들을 파괴해 간다. 신임 재해대책본부장 가타기리는 고질라를 처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지만 속수무책이다.
한편 바다 밑에서 에너지를 품은 거대한 암괴가 발견되고 가타기리는 이를 물 밖으로 끌어낸다. 과학자들은 암괴의 에너지원이 빛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그사이 암괴는 인간과 고질라의 한바탕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상공을 날아 고질라와 정면대결을 벌이며 힘을 빼앗는다. 고질라의 방사선에 암괴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대형 비행물체가 드러나고, 이 물체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지구의 컴퓨터를 장악해 가며 대기의 구도를 변화시킨다. 시노다 박사와 유키가 외계인의 암호를 해독해 냈을 때쯤 자생적인 치유력을 가진 고질라가 복수를 위해 다시 나타난다.
「고질라」는 수많은 괴수 캐릭터의 시발점을 제시해 주었다. 미국뿐 아니라 북한영화 「불가사리」나 한국의 「용가리」 역시 「고질라」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다. 어딘지 유치하고 산만하지만 즐거운 가족영화로 아이들의 정서적 감성 코드를 자극하는 재미는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