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서성기 세계 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회장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재료 전시회인 「세미콘 웨스트(SEMICON West) 2000」 전시회가 열린 지난 11일 오전 8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매리어트호텔 클럽룸에서는 한국 반도체 산업계에 경사스러운 행사가 펼쳐쳤다.

세계 반도체 장비·재료업체들로 구성된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 Semiconductor Equipment & Materials International)의 회장에 서성기 에이텍 사장이 만장일치로 선출된 것이다.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는 SEMI 회장에 한국인이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동양인으로는 두 번째다.

SEMI는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 관련 장비·재료의 기술 표준화와 인증작업, 대정부 정책 건의 등을 주로 하며 세계 각 지역에서 해마다 10여 차례씩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하는 국제적인 조직이다. 본부는 미국 새너제이에 있다. 회원사만 2300여개인 SEMI에서 고작 120여개사뿐인 한국이 회장국이 된 것은 그만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이 강화됐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내년 7월까지 1년동안 회장직을 맡을 서성기 회장은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는 데도 회장으로 뽑혔다』고 겸손해 하면서도 『한국 반도체산업의 위상에 걸맞게 재임기간 중 국내 반도체 장비·재료 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회장으로 선출되자 벌써부터 국내 업계의 주문과 기대들이 쏟아지고 있다.

서 회장은 『전세계 회원사를 대표하는 회장인 만큼 한국에만 특혜를 줄 수는 없다』고 운을 떼면서도 국내 반도체 업체에 대한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미 주식시장에 미국·유럽·일본의 80여개 반도체 장비·재료 업체들의 주식 현황를 모은 「SEMI 인덱스」에 한국 업체들의 주가를 포함시키는 것을 바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반도체 소자 업체와 장비·재료 업체간 협조를 위해 올해 중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ASIC 및 수탁생산 업체들도 SEMI 회원으로 받아들여 협력체제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회장에 취임하기 전에도 SEMI이사로 활약했다. 91년부터 10년 동안이다. 지인들의 말마따나 그는 「돈·시간·노력을 아끼지 않고」 한국의 위상 강화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런 만큼 서 회장은 국내 업체들에 당부의 말을 빼놓지 않는다.

『국내 업체는 아직도 SEMI의 각종 반도체 기술 표준화 및 정책회의에 참여하는 게 적습니다. 코앞에 있는 이익만 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SEMI의 국제 학회에도 자꾸 얼굴을 내밀어 외국과 기술을 주고받으면서 「큰 그릇」을 빚어나가야 합니다.』

그는 지난 75년 삼성반도체에 엔지니어로 몸담은 이후 지금까지 25년 동안 반도체 장비분야에서 외길인생을 걸어 왔다. SEMI 회장에 오른 것도 이러한 전문성과 국제적으로 쌓은 탄탄한 인맥, 뛰어난 어학실력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80년대 초반 삼성을 떠나 베리안·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등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어 유니텍·재림엔지니어링·베리안코리아·청송시스템(현 아이피에스) 등을 설립, 차례로 사장을 역임하면서 반도체 장비 국산화에 기여해 왔다.

『지난 79년부터 세미콘웨스트와 세미콘재팬 전시회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켜봤습니다. 볼 때마다 국내의 반도체 장비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외국업체들과 적극 합작해 선진 반도체장비 기술도입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한 우물을 파온 서 회장은 국내 반도체 장비·재료산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내 반도체 소자들이 조금만 더 장비·재료업체들을 도와줬다면, 국내 반도체 장비·재료 기술은 지금보다 더욱 발전했을 겁니다. 이제 막 창업한 업체들이 어떻게 처음부터 세계 최고의 첨단장비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무조건 도와 달라는 게 아니라 「경쟁력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국내 장비업체들의 부족한 점을 도와 달라는 겁니다. 장비업체의 경쟁력이 곧 소자업체의 경쟁력입니다.』

장비업체들에도 할 말이 많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미친 듯」 달라 붙어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지금은 벤처캐피털 회사와 장비업체 등을 같이 경영하고 있지만, 내년 회장 임기를 마치면 반도체 전공정 핵심장비 개발에 다시 도전할 작정입니다.』

그는 큼직한 포부를 갖고 있다. 『국내 ASIC업체들은 애써 고생해 반도체를 개발하고도 생산설비가 없어 해외 반도체 생산업체로 들고 나갑니다. 생산을 대신해줄 업체를 만드는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직접 경영하거나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반도체 장비·재료 및 주문형반도체(ASIC)관련 업체는 10개사. 지난 2월에는 다른 반도체 장비업체들과 함께 에이스벤처캐피털을 설립, 반도체 장비·ASIC 분야 6, 7개 제조업체들에 집중 투자해 자금 및 기술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 25년 넘게 여러 개의 합작사를 무난하게 경영해온 그가 갖고 있는 경영관은 무엇일까.

『지금껏 회사를 경영해 오면서 「약은 수」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도」를 걷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 왔습니다. 정공법이 아닌 눈속임으로 하는 기업이나 개인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술이 모자라더라도 성실성을 보여주면 된다고 봅니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밸리」 한 복판에 자리잡은 사무실에서 『나이는 50이지만 청년들 못지 않은 정열을 갖고 있다』는 서성기 회장은 새로운 모험을 꿈꾼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약력>

△에이텍 대표이사(현) △에이스벤처캐피탈 대표이사(현) △Tosoh코리아 대표이사(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사(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이사(현) △SEMI 부회장(1999.7∼2000.6) △청송시스템 대표이사(1996) △토소SMD설립(1994) △청송엔지니어링 설립(현 에이텍) △베리안코리아 대표이사 역임 △재림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역임(1979) △삼성반도체 입사(1975) △유한대학교 기계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