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위기론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닷컴기업의 가치가 오프라인기업보다 과대평가돼 있다는 볼멘소리에 머물던 거품론이 급기야 코스닥 폭락에 따른 자금경색으로 비화되면서 닷컴기업은 다 망한다는 인식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씨만 뿌리면 황금열매가 열리는 옥토가 졸지에 황무지로 변해버리는 이해 못할 조화속이다. 이같은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국내 닷컴업계 안팎에서는 전과 다른 변화된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진화론적 적자생존의 발로다. 닷컴의 진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새로운 변화들을 5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1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
2회. 수익을 창출하라
3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4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5회. 져주는 것도 이기는 길이다
1.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
비용을 줄이는 것은 닷컴기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지상과제다. 언제 자금이 바닥날지 모른다. 그러나 닷컴기업들의 비용절감 노력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회성 발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대부분 닷컴 경영자들은 무모하리만치 돈을 쏟아부었던 그동안의 마케팅전략을 후회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경쟁업체들의 물량공세에 속앓이만 했던 CEO들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에 전율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지각있는 닷컴업계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자금경색이 일찍 왔다는 사실에 차라리 안도하는 분위기다.
『코스닥 활황으로 일반인들은 물론 닷컴기업들조차 벤처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나 걱정했습니다. 필요한 돈은 언제 얼마든지 끌어쓸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지요. 벤처 선배들은 돈 5000만원을 구하기 위해 은행을 제집 드나들 듯 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성공을 일구어냈습니다. 이제 벤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지금이 우리 사회가 조성한 벤처산업의 흥청망청 분위기를 쇄신하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닷컴을 하면 떼돈을 번다」는 악성 종양이 빨리 발견됐기에 닷컴산업 전체가 치사지경에 이르기 전에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또다른 변화는 냉혹한 시장의 속성과 요구를 읽을 줄 아는 지혜를 터특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거품론이 일 즈음 닷컴업계는 이를 무식의 소치라고 치부했다. 미래가치가 중요한 닷컴기업을 현재가치로만 평가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발상과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픈 질투일 따름이라고 여겼다.
또한 코스닥이 폭락하면서 수익성이 화두로 떠올랐을 때는 닷컴기업의 속성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라고 항변했다. 초기 진입과 정착단계를 거쳐 매출확장단계에 이르고 그 이후에야 수익성단계로 접어드는 게 닷컴기업의 정해진 항로인데 정착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수익성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겸손해졌다. 무리일지라도 그것이 시장의 요구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이 닷컴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많은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했기 때문에 시장의 요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잠못 이루는 CEO가 한둘 아니다.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모든 책임이 저한테 쏠리니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젠 제가 해야만 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천문학적인 부자로,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가 만인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등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의 말이다.
『닷컴비즈니스가 벤처로서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코스닥 진입에만 성공하면 지속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성공에 이르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다시피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습니다. 닷컴벤처는 마라톤 경기라는 사실, 그래서 힘을 비축해가며 경기를 펼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잘나가던 모 회사 사장은 기업경영 경험이 없던 닷컴기업인들이 너무나 풍족한 현실에 경영의 ABC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으며 또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