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서비스 소비자 주권시대>1회-무시당하는 이용자

통신서비스 이용자 수만 보면 우리나라는 통신대국이다.

유선전화, 이동전화, 인터넷 이용비율은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나 통신서비스 이용자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통신서비스는 기술진보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권익 향상도 매우 중요하다. 본지는 통신서비스에서의 소비자 주권 신장을 위한 기획물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최근 모 이동전화서비스에 가입한 L씨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가입 후 이동전화단말기에 시도때도 없이 뉴스나 생활 정보, 영어회화 등이 들어오는 바람에 업무에 지장을 받았다. 이씨는 해당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다. 대리점 여직원의 대답은 예외였다. 「가입시 뉴스 서비스를 선택했는데 무슨 소리냐」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만 들었다.

화가난 L씨는 대리점을 찾았다. 1시간 가량을 싸운 결과 서비스를 중단시킬 수 있었다. 단말기 구입시 L씨에게 묻지도 않고 뉴스 정보 서비스에 가입을 해 놓은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무선인터넷 서비스에 가입시킬 경우 소정의 판매 장려금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저지른 대리점 직원의 얄팍한 상술이었다.

또 다른 L씨는 M사에서 판매하는 유무선전화기를 구입해 사용하던 중 원하지도 않은 D사의 시외전화 서비스에 가입돼 있음을 알게 됐다. 김씨는 시외전화회사로부터 사용료 고지서가 배달돼 왔으나 잘못 고지된 것으로 알고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

해당회사에서는 요금 납부 독촉장을 보냈고 그제서야 L씨는 자신이 D사의 시외전화서비스에 가입돼 있음을 알게 됐다. 계약 당시 판매점에서 M사의 전화기에 D사 서비스만을 이용할 수 있는 장치가 내장돼 있음을 설명하지 않은 결과였다.

J씨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J씨는 얼마 전 국제전화 사용요금을 내지 않아 신용블랙리스트에 올랐다. H신용회사로부터 국제전화 사용요금을 내라는 독촉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J씨는 국제전화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J씨는 해당 전화회사에 가입신청서와 통화내역서를 요구했다. 전화회사는 「자료는 없지만 전화요금 고지서가 납부된 것으로 봐서 국제전화를 사용한 것이 확실하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폈다.

J씨가 택한 곳은 결국 소비자보호원이다. J씨는 4개월만에 이를 가까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통신서비스 이용에 따른 소비자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정보통신부 산하 통신위위원회는 물론 한국소비자보호원과 주부교실에 접수되는 피해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그럴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통신서비스 피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피해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통화품질과 관련한 사소한 분쟁부터 동전식 공중전화기 낙전, 타이름을 도용한 통신서비스 이용, 소비자 의사와 무관한 도·감청, 가입자 정보의 누출 등 끝이 없다.

통신서비스 소비자 피해는 대부분 서비스 당사자인 사업자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다. 유선전화나 이동전화 서비스의 경우 시스템이나 전용회선 고장, 기지국 파손으로 피해가 발생한다. 그러나 피해의 책임은 소비자 당사자가 져야 한다. 통신사업자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지만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소비자 스스로 입증해야만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고객감동, 고객만족, 고객행복」을 주장해도 피해발생시 고객의 권리는 무시된다.

7월 현재 국내 통신서비스 이용자 중 유선전화 이용자는 2150만명, 이동전화 이용자는 2610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무선호출 150만명, 인터넷 1500만명을 합하면 국내 통신인구는 6000만명을 넘는다.

이들은 통신서비스 이용자인 동시에 잠재적 피해자들이다. 이들 통신서비스 이용자 대부분은 서비스 이용도중 불편이나 피해를 경험했다. 정통부나 소비자단체에 통신피해를 호소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통신서비스 퇴출로 인해 소비자의 서비스 이용권리가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 SK텔레콤은 금년 1월 아날로그 이동전화서비스를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가입자는 수천여명이다. 이들은 SK텔레콤이 아날로그 서비스를 중단하는 바람에 디지털 서비스로 바꿔야 했다. SK측에서 신형 단말기로 교체해줬지만 「디지털에 비해 아날로그가 음질이 좋다」는 소비자 기호는 무시됐다.

아예 사업 전체가 퇴출돼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도심형 발신전화라는 명칭을 얻었던 시티폰이 바로 그것이다. 저가형이라는 이유로 서민층의 관심대상이던 시티폰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자가 퇴출을 결정, 많은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 무선호출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최근 나래앤컴퍼니, 전북이동통신, 제주이동통신의 연이은 서비스 반납 결정으로 수만명에 이르는 무선호출가입자의 서비스 선택권 침해가 예상된다.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서비스가 아닌 다른 사업자 서비스로 바꿔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입자들은 단말기나 번호도 바꿔야 한다. 번호를 바꾸는 경우에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이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국내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고객지원센터에는 하루에 수만건의 전화가 걸려온다. 대부분의 전화는 항의전화다.

『하루에 100여통의 항의전화를 받습니다. 대부분이 광고와는 다른 인터넷 속도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실시하는 한 통신사업자 고객센터 직원의 말이다. 초고속인터넷이 아니라 「거북이 인터넷」이라는 것이 항의의 주된 내용이다. 이 같은 상황은 유무선 통신사업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통신서비스 피해를 줄이기 위한 뾰족한 대책은 없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