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산자부가 주관한 「e비즈니스주간」 행사중 전자·조선업종 CEO들이 각각 공동 마켓플레이스 구축에 합의하는 조인식을 가졌다. 하지만 이 조인식은 제대로된 합의도출 과정도 없이 급조된 성격이 짙다.
『전자·조선 업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갑작스레 공동 마켓플레이스 구축 합의행사에 참가하라는 전달을 받고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충분한 논의나 실무자간 합의가 안돼 CEO에게 보고도 못했는데 산업자원부 장관이 주관하는 행사인 만큼 조인식을 가져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산자부는 뭔가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었고 이 과정에서 영문도 모르는 업계 관계자들은 일단 시늉이라도 낼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했다. 기업간 전자상거래(EC)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는 높이 살만하지만 정책적인 과욕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일고 있다.
◇이벤트에 연연=산자부가 당장 눈앞의 실적에 급급한 모습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모 협회 관계자는 『사업을 일단 벌여놓고 보자며 벌리지만 공무원들이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업계로서는 걱정이 앞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산자부는 올 초 정통부로부터 EC 관련 정책을 넘겨받자마자 지난 6월까지 불과 4개월만에 두 차례의 대규모 행사를 치렀다. 3월의 인터넷EC 행사와 이를 확대한 6월의 「글로벌 e비즈 주간」이 그것이다. 여기다 이달 말 열릴 EC 관련 국제포럼까지 합하면 6개월만에 무려 세 차례의 대규모 이벤트를 개최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관련 협회 등 산하단체들은 온통 행사 준비에만 역량을 쏟아야 하고 자체 e비즈니스 사업 챙기기에 바쁜 기업들도 적지 않은 시간·경비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본말의 전도=산자부의 정책 기조가 e마켓플레이스 육성이든 CALS 보급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업계의 참여의지라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중앙대 이남용 교수는 『CALS가 실패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외형적인 실적에 집착했기 때문』이라며 『마켓플레이스와 CALS는 협력과 공유라는 근본적인 철학이 같은 만큼 업계 공동기반 구축이나 공감대 형성 등 내실다지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아무리 산자부가 「기업간(B2B) EC 활성화」 「업계 공동 마켓플레이스 육성」 등을 외치더라도 기업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한 선언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란 비판이다. 당장 전자·조선 부문의 공동 마켓플레이스만 해도 정부가 일단 기업들을 끌어내기는 했지만 과연 끝까지 공조체제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LG그룹 관계자는 『마켓플레이스 자체가 시장논리에 좌우되는 것이므로 정부가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업계가 공동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유도하는 게 정작 정부가 주력해야 할 역할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획일적 시각=업계 「공동 마켓플레이스 육성」이라는 산자부 정책의 논리적 근거는 글로벌 EC환경에 대비한 국내 산업의 역량 결집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지금처럼 대기업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닐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며 『이 때문에 공동 마켓플레이스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모 대기업 관계자는 『상당수 대기업들은 산자부가 강조하는 공동 마켓플레이스가 애초부터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 「국내용」이라는 점 때문에 참여를 꺼린다』고 말했다.
업종에 따라 글로벌 지향적인 것도 있지만 단순히 로컬에 국한될 마켓플레이스도 있어 이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모 협회 관계자도 『정부의 마켓플레이스 정책이 글로벌 지향적인 대기업보다 대다수 중견·중소기업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어 빠르게 앞서가는 대기업들로선 불만스러울 것』이라고 고백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