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기업에서 매일 업무에 시달리는 서모씨는 오늘도 바쁘게 점심을 끝내고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책상과 컴퓨터에는 여전히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한창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서씨는 갑자기 배를 움켜잡고 책상에 엎드린다. 아프지만 오늘 끝내야 할 일이 산적해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나머지 한손으로는 마우스를 잡았다.
갑자기 서씨의 머리 속에는 얼마전 신문에서 읽었던 사이버 처방전이 떠올랐다. 서씨는 마우스를 움직여 검색사이트로 들어가 사이버 병원을 검색했다. 채팅 서비스를 이용해 실시간 진료 상담을 받은 후 처방전을 메일로 받았다. 하지만 걱정은 한가지 더. 약국에 갈 시간이 없다.
사이버 병원은 약국과도 연결돼 카드로 결제한 후 1시간이 지나자 약이 사무실로 배달됐다. 서씨는 약을 먹고 그날의 일과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서씨의 이야기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소설의 한부분이 아니다. 바로 우리 생활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제 사례다.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주식투자·여가생활 등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가장 많이 걱정하고 신경을 쓴다. 그렇다고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병원까지 찾아가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다시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서 약을 조제받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약국에 처방전의 약이 없다고 전국 약국을 다 찾아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칫 미루다가 병이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악화된다면 어쩌겠는가.
그러나 정보기술(IT)은 현재 의료서비스가 갖고 있는 이같은 제약과 한계성을 극복해 일반인의 건강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
IT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사이버공간에 다수의 인터넷 기업들이 사이버병원을 설립, 의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의약분업 실시로 벤처를 창업하는 의사들도 늘어 고급 의료정보와 믿을 수 있는 사이버 진료의 기회도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병원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바쁜 직장생활에 쫓겨 자신의 건강은 물론 가족의 건강조차 돌볼 여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이 곳에서 친절하면서 상세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사이버병원의 출현은 기존 의료 체계를 전환시키고 있다. 이제까지 의사 중심으로 전개되던 의료서비스를 환자(일반인) 중심으로 전환시켜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의료·건강 포털사이트와 사이버 병원은 환자와 병원의 거리를 획기적으로 좁혀준다.
환자의 입장에서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의 인터넷을 통한 의료정보와 사이버진료에 대한 쏟아지는 관심은 사이버의료가 하나의 사업 모델로도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인터넷을 통한 의료·건강 상담 서비스가 바쁜 현대인에게 각광받는 서비스로 부각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의료·건강 포털사이트도 빠르게 늘고 있다.
관련 사이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며, 의약분업과 함께 의사들의 벤처창업도 줄을 잇고 있다.
의료·건강관련 사이트의 개설 폭주는 이용자의 측면에서 그동안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고급 의료정보를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반면 정리되지 않은 정보들로 인한 부작용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우라나라의 경우 아직 인터넷 상의 건강정보는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생명을 다루는 건강정보 사이트에 담긴 정보에 오류가 있어 최악의 경우 이용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해도 줄 수 있다.
불법 제품의 정보가 의료정보와 함께 사이트에서 제공되거나 연결되어 만병통치약 내지는 모든 암에 효과가 있다고 소개되는 경우가 있으며, 일반인이 판단하기 어려운 의료정보와 의약광고를 구분하지 않고 절묘하게 혼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터넷 상의 잘못된 의료정보 정화를 위해 정부가 직접 규제하거나, 학회나 민긴단체가 나서서 강령이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감시하는 방법 등이 필요하다.
이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사례로 온라인 보건 의료정보에 관한 HON(http://www.hon.ch)규약이 있다. 세계 각지 원격진료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것으로 1996년 인터넷 의료에 관한 HON 규약 8개 항목을 발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HON은 비영리단체로서 제네바 당국과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HON은 HON규약을 기반으로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의 신청을 받아 전문가들 검증을 통해 그 사이트에 HON인증을 부여한다. 네티즌은 HON의 인증을 받은 사이트라면 안심하고 그 사이트의 의료정보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규약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차원이나 비영리 의료 관련 단체 등에서 규약을 만들어 의료 정보 사이트 인증제를 도입하는 것이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믿을 수 있는 정보만을 검색할 수 있는 검색사이트 운영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잘못된 의료정보에 대한 네티즌 스스로의 판단도 중요하다.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을 지양하고 자신에게 맞는 양질의 의료정보만을 선택하는 안목도 기를 필요가 있다.
아주대 의과대학 이재옥 교수는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정부나 신뢰할 수 있는 단체가 나서서 의료정보를 인증하는 제도가 가장 우선시되고 더불어 사이트 운영자 스스로도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의료정보의 부작용을 막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