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 법제화 너무 멀고 험하다

차세대 디지털경제 환경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전자상거래(EC) 관련 법제 정비작업이 표류하고 있다. EC가 전통적인 상거래 환경에 포괄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관련 분야별로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지만, 유관 부처들의 미진한 의견조율 과정과 각급 이해단체들의 반발에 밀려 겉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최근 EC를 미래산업의 핵심축으로 설정, 『각급 법안들을 정비중』이라고 홍보에 혈안이 돼 있지만 정책실무자들은 논의조차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어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25일 정책당국에 따르면 정부가 EC환경조성을 위해 현안으로 제시한 관련 법제 정비작업이 관계 부처들의 의견대립과 각급 이해당사자들의 반발 때문에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또 최근 개정안이 나온 일부 법안들의 경우 유관 부처·단체간 의견조정 과정에서 졸속으로 마련되기도 했다.

전자거래기본법·전자서명법 등과 함께 EC관련 3대 주요법안으로 꼽히는 전자자금이체(EFT)법은 최근 금융감독위원회가 제정작업에 착수했다. 주무부처인 재경부가 그동안 법률제정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일관함으로써 법안 발의기능이 없는 금감위가 나서는 기현상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EFT법 제정의 필요성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온데다 갈수록 EC시장이 확산되고 있어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고 설명하며 『일단 법률안을 마련한 뒤 곧 재경부측에 전달하고 법제화를 촉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넷뱅킹 등 사이버금융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자금융거래 기본약관」 제정작업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말 은행연합회가 마련, 금감위 승인을 받은 은행권 약관안은 현재 공정위로부터 제동이 걸린 상태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자금융사고 발생시 책임소재와 범위, 입증책임 등을 놓고 은행권과 의견조율을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과실책임 원칙을 삽입하고 다만 입증책임만을 은행권이 지는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수용전망은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공정위의 견해를 은행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면서 『업계 표준약관 제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법률 개정작업이 진행중인 조세특례제한법은 EC 관련 설비투자에만 세제혜택을 줄 뿐, 정작 EC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산업전반에 촉진제가 될지 미지수다.

최근 개정안이 나온 조달사업법·국가계약법 등도 극히 낮은 수준에서 전자조달을 명시, 정부가 기업대 정부간(B2G) EC의 주체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이밖에 사이버무역 환경조성을 위한 대외무역법 개정안은 당초안과 달리 인증(CA)기능을 제외한 무역지원기관 설립을 제시해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사이버소비자센타 강성진 소장은 『법제 정비는 시장환경을 고려해 적기에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특히 아쉬운 점은 부처간 협의문화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