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라이프사이클이 빨라지면서 전자업계에 불용재고가 넘쳐나고 있다. 해마다 1조원에 달하는 불용재고가 전자업계 창고에 쌓이고 있으며 전자업체들은 불용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용재고란 말그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재고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잉여재고를 포함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즉, 불용재고란 기업들이 원활한 생산활동을 위해 의도적으로 갖고 있는 재고가 아니라 앞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불필요한 재고를 의미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1조원 어치의 불용재고가 해마다 국내 전자업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업체별로 환산할 경우 국내 전자업체들은 평균 연간매출 대비 2∼5% 수준의 불용재고를 갖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전자제품 마진율이 10%에도 못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욱이 불용재고가 자원낭비 및 환경오염이라는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이제라도 불용재고의 효율적인 처리방안을 마련, 시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
◇불용재고 현황 =현재 우리나라에는 불용재고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자료가 없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다.
이는 각 업체들도 불용재고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설령 불용재고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대외비 사항으로 분류,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철저히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회원사를 대상으로 불용재고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과 인터넷 경매 등을 통해 불용재고를 유통시키고 있는 전자부품 B2B업체에 따르면 해마다 새로 쌓이는 불용재고는 적어도 국내 세트업체 연간 매출의 7%에 달하는 1조원 규모는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례로 전자조합에 불용재고 현황자료를 제출한 A사(불용재고 현황파악 진행중)의 경우에는 현재까지 파악된 불용재고만 해도 무려 800여종에 금액으로는 연간 매출액 540억원의 1%가 넘는 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B사는 연간매출 450억원의 3%가 넘는 15억원 어치 1400여종의 부품을 불용재고로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C사는 연간 매출액이 64억원에 불과한 데 반해 현재 갖고 있는 불용재고는 연간 매출의 8% 수준인 5억원 규모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D사는 연간 매출액 100억원의 4%인 4억원 어치의 불용재고를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업체별로 불용재고 보유 현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매출액 대비 불용재고 비율이 낮은 일부 업체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조사미흡 등을 이유로 불용재고 전체 현황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어 실제 이들 업체의 매출액 대비 불용재고 비중은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표참조
전자조합 관계자는 『아직까지 불용재고 현황자료를 제출한 회원사가 많지 않아 정확한 실태파악은 어려운 상태』라고 전제하고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회원사들이 갖고 있는 불용재고는 연간 매출액의 2∼5%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용재고 발생이유 =전자업체들은 불용재고가 골칫덩어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불용재고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으며 점차 그 양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불용재고를 발생시키는 첫번째 요인은 갈수록 짧아지는 전자제품의 라이프사이클.
일례로 A라는 냉장고 생산업체가 신모델을 개발, 생산모델을 B에서 C로 바꾸게 되면 그 순간부터 B란 모델에만 적용되던 부품들은 졸지에 불용재고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소비자 기호가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 세트업체의 생산모델 변경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어 불가피하게 불용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불용재고가 생기는 또다른 이유는 세트업체가 대량구매를 할 경우 구매단가가 떨어지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 어떤 경우에는 필요 이상의 부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즉, A라는 업체의 경우 당장은 8만개의 콘덴서가 필요하지만 10만개를 구입하면 부품 구매단가가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나중 상황 등을 감안, 10만개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일부가 자연스럽게 불용재고로 쌓이게 되는 것이다.
세트업체뿐 아니라 부품업체에도 불용재고가 발생하는데 이 경우에는 세트업체가 부품업체에 주문했던 특수규격의 제품을 구매해 주지 않아 부품업체의 판로가 막혀 불가피하게 불용재고를 안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불용재고 유통실태 및 문제점 =대부분의 전자업체들은 불용재고가 일정 정도 쌓이면 불용재고만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업자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입찰을 실시, 정상가격의 20∼30% 가격에 덤핑처분하고 있으며 중간 유통업자들은 헐값에 사들인 이 물건들에 높은 마진을 붙여 재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덤핑처리마저 안되는 불용재고의 경우에는 소각처리 등의 방법을 통해 폐기처분돼 자원낭비는 물론 환경오염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A사에는 필요없지만 다른 업체에는 정상적으로 쓰일 수 있는 불용재고가 블랙마켓을 거쳐 비정상적으로 유통되는 것은 우선 대부분의 전자업체 구매담당자들이 「불용재고는 곧 자원이자 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들은 불용재고를 재분류해 정상적으로 유통시키는 수고를 하기보다는 우선 헐값에라도 처분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업계의 한 구매담당자는 『솔직히 불용재고가 발생하면 우선 이를 처분하는 데 급급한 것이 사실』이라며 『불용재고를 항목별로 분류해 제값을 받고 판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어려울 뿐 아니라 업무 담당자에게는 매우 귀찮고 힘든 일이서 선뜻 나서게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불용재고가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거쳐 재활용되지 못함에 따라 각 업체들은 불용재고로 인한 원가상승 압박에 시달리게 되고 이는 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불용재고가 전자제품의 원가요인으로 계산돼 이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이다.
<김성욱기자 sw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