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월드>용쟁호투

2000년 10월, 한국 게임 시장은 후한이 망한 후 위·촉·오 등이 패권을 다투던 삼국지의 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8년 4월 블리자드사가 출시한 「스타크래프트」는 저물어가는 후한을 닮았다. 9월말 현재 국내 판매량만 170만카피에 이르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2년 6개월여에 이르는 스타크래프트의 제국은 이미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무너지고 있는 이 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포스트 스타크래프트」의 패권을 차지하겠다고 나선 것이 「디아블로Ⅱ」.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블리자드가 개발, 한빛소프트(대표 김영만)가 국내에 배급한 디아블로Ⅱ는 저물어가는 후한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위나라와 비슷하다. 조조의 위나라가 초기에 가장 먼저 강대한 국가를 건립한 것처럼 디아블로Ⅱ 진영은 이미 6월 30일 오리지널 영문판, 7월 18일 영문 틴 버전을 출시해 이달 중순 현재 45만카피를 판매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여름부터 지난 9월까지는 이렇다 할 적군이 없어 영토를 확장해 왔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에이지오브엠파이어Ⅱ」와 「레드얼럿Ⅱ」라는 제국이 중원을 향해 영토를 확장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지역을 근거로 한 손권의 오나라가 그랬듯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에이지오브엠파이어Ⅱ는 이미 상당한 세력을 결집해 놓고 있어 위촉즉발의 상황이다. 또한 EA와 웨스트우드의 연합군이 오는 24일 출시할 레드얼럿Ⅱ는 소재와 배경은 다르지만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점에서 「스타크래프트의 후손」임을 자처하고 세력을 모으고 있다.

레드얼럿Ⅱ가 출시되는 이달 말과 디아블로Ⅱ 한글버전이 출시되는 11월 중순경 각각 1, 2차전을 치를 이 싸움에서 어느 진영이 승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는 진영이 「포스트 스타크래프트」의 패권이라는 명예와 함께 연중 최대호황기인 겨울 시즌에서 막대한 돈을 긁어모을 것은 분명하다.

수성의 위치에 있는 디아블로Ⅱ는 한글 버전으로 제압하겠다는 전략이다. 디아블로Ⅱ는 게이머들이 가상의 게임 세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진행하는 게임으로, 그동안 출시된 영문 버전의 경우 일부 마니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게임의 진수를 알기는 힘들다는 것. 따라서 게임의 메뉴, 대사 등을 한글화한 제품을 내놓을 경우에는 디아블로Ⅱ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 및 계층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디아블로Ⅱ의 국내 배급사인 한빛소프트는 한글 버전을 11월 10일경 출시, 연말까지 50만카피를 판매해 인기를 이어

가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9월 중순 에이지오브엠파이어Ⅱ 한글판을 출시, 디아블로Ⅱ 진영에 도전장을 던진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시리즈의 지명도와 한국화된 장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 99년 10월 출시된 「에이지오브엠파이어Ⅱ- 에이지 오브 킹」은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500만카피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번에 한글화됐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가 히든 카드로 내놓은 에이지오브엠파이어Ⅱ의 확장팩 「컨커런스익스팬션」에는 거북선이 유닛으로 등장하며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을 게임 시나리오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등 게임 속에 한국의 역사가 등장하기 때문에 큰 인기를 모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는 지난달 중순 출시한 이후 현재까지 「컨커런스익스팬션」을 5만카피 판매했으며 조만간 10만카피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는 24일 레드얼럿Ⅱ가 출시되면 디아블로Ⅱ와 에이지오브엠파이어Ⅱ 등이 영토를 나누어 갖고 균형을 이루었던 중원이 또 다시 전쟁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블리자드사와 함께 전략 시뮬레이션의 명가로 꼽히는 웨스트우드사가 스타크래프트에게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준비한 레드얼럿Ⅱ는 국내 배급사인 EA코리아(대표 아이린추어)가 50만카피 판매를 장담할 정도로 흥행성이 높은 대작이다. 특히 웨스트우드사는 이 작품을 기획 단계에서부터 한국의 게이머를 염두에 두고 개발함으로써 레드얼럿Ⅱ는 한국화된 게임의 단계를 넘어 한국이 게임의 중심에 서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9개 국가가 벌이는 전쟁을 소재로 한 이 게임에는 우리나라가 한 개의 엔트리로 포함돼 있으며 우리나라의 공군기 블랙이글이 보라매라는 이름으로 최강의 무기 유닛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