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게임대회서 활짝 핀 우정의 꽃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대회인 월드사이버게임챌린지(WCGC)가 PC게임의 세계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각 종목 결승전만을 남겨두고 있다.

폐막을 하루 앞둔 용인에서는 「누가 최고의 게이머로 부상할지」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함께 수만리 바다를 건너 동양의 게임강국 한국을 찾아온 17개국 180여명의 선수간 우정의 꽃이 만발하고 있다.

비록 좋아하는 게임은 다르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들과의 한판승부를 치르고 나면 어느새 친구가 되어 버린다. 자국의 게임문화와 환경을 설명하며 때로는 부러움을, 때로는 충고를 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게임대회가 n세대의 e스포츠문화로 자리잡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스웨덴 퀘이크Ⅲ 대표선수로 출전한 프레드릭 에데스터는 게임이 좋아 넷카페에서 일하며 게임을 즐기는 게임광이다. 에데스터는 『하루 3시간 정도 게임을 즐기고 있으며 특별한 대회를 앞두면 하루 8시간 이상 게임에 몰두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한다』며 『스웨덴에선 퀘이크Ⅲ가 가장 대중적인 게임이고 퀘이크Ⅲ 종목에만 출전하는 프로게이머들은 수입도 꽤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의 키보드와 마우스, 헤드세트 등을 직접 챙겨올 정도로 이번 대회에 열정을 갖고 임한 스타크래프트 스웨덴 대표인 토머스 뱅슨은 『학교에서 겨우 10일 정도 휴가를 받게 돼 이번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며 『메달보다도 한국을 방문한 경험과 세계 각국의 게이머들과 쌓은 우정이 더욱 소중하다』고 말했다.

캐나다 언리얼토너먼트 선수로 참가한 웨인 야오는 비록 15살이지만 게임경력 2∼3년이 넘는 배테랑이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이번 예선전에 임했지만 웨인만 선발되는 행운을 잡았다고 한다. 웨인 야오는 『캐나다에도 한국의 PC방과 같은 넷카페가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캐나다의 게이머들은 퀘이크나 언리얼토너먼트를 즐기고 있으며 스타크는 이미 인기가 시들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의 스타크래프트 대표로 출전한 유진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들어 있는 게임백을 가져오지 않아 대전을 못치른 불운의 덤벙이다. 하지만 유진은 아쉽게 놓쳐 버린 금메달의 희망보다 생전 처음 접해본 먼 이국의 체험이 신기하기만 한 모양이다. 유진은 『한국의 게이머들이 PC방을 통해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이 가장 부럽다』며 『다행히 뉴욕의 스퀘어가든 부근에도 최근 넷카페가 많이 형성돼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과 가끔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이외의 복병으로 각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국 선수단을 이끌고 온 쉔 큉 카이 단장은 『스타크래프트와 퀘이크Ⅲ는 좀 어려울지 모르지만 에이지 오브 킹, 피파2000만큼은 중국 선수들도 못지 않은 실력을 갖고 있다』며 『중국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게임은 단연 스타크래프트』라고 전했다. 또 그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훌륭한 선수들을 선발해 중국이 게임강국임을 임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장에서는 이국만리를 건너온 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각국 부모들의 열정도 뜨겁다.

미국에서 언리얼토너먼트 출전 자격을 딴 아들 제레미(15)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고든 에반스는 아들의 새로운 경험을 위해 기꺼이 동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미국 AIG보험회사를 다니며 아들 못지 않게 게임을 즐기는 고든 에반스는 『다음 대회부터는 언리얼토너먼트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아들과 함께 대회에 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한국의 온돌방 바닥에 자는 게 좀 힘들지만 색다른 경험이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에 출전한 아들 대니얼 머피와 함께 한국을 찾은 마리안 머피 여사는 『공부보다 게임을 더 즐기는 아들 머피가 다소 걱정스러울 때도 있지만 아들의 한국방문 경험이 살아가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 7일부터 이번 대회를 지켜본 홍콩의 프로게임머 잡지 기자인 레이먼드는

『홍콩 게임시장은 한국에 비해 시장규모가 4분의 1 정도로 이제 막 성장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게임대회가 많지 않다』며 한국의 PC방 인프라와 WCGC대회에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네트워크 기술과 게임이 결합되면서 세계의 게이머들은 이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게임을 통해 세계 각지의 게이머들과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게임이 인종·국가·세대를 뛰어 넘는 만국공용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