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없는 전쟁」
최신 무기를 사용하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다. 네트워크가 오픈돼 있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해킹이나 바이러스를 이용해 상대국의 기간망을 치명적으로 뒤흔들어 놓는 것도 전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바로 사이버 전쟁인 것이다. 이념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사이버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 예가 중국과 대만 해커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전쟁이다.
대만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10월 10일)을 앞둔 9일 중국 및 대만의 주요 외신은 일제히 중국해커들이 대만 정부기관의 웹사이트를 공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해커들은 대만 정부기관 웹사이트를 공격했고 대만해커들도 중국 철도부 사이트에 대만국기와 국가를 올려놓는 등 웹사이트 변경방법으로 중국측에 반격을 가했다.
중국과 대만의 사이버 전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에도 중국의 한 해커가 대만 정부 웹사이트를 해킹, 「대만은 분리될 수 없는 중국의 영토」라는 말과 함께 「중국은 하나」라는 슬로건과 중국기가 나부끼는 동영상을 올려놓은 바 있다. 또 지난 5월 천수이볜이 대만의 새 총통으로 올라서면서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앙심을 품은 중국해커들이 지난 9월에도 대만 정부 관련 사이트를 공격했다.
비록 지금까지 중국과 대만간 사이버 전쟁에서는 커다란 피해사항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날로 확산되는 양국 해커들간의 사이버 전투가 실제 전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 97년 컴퓨터바이러스부대에 이어 99년에는 해커부대를 창설하는 등 사이버 전쟁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고 대만도 다각적인 사이버 전쟁 대응 훈련을 하고 있다.
최근 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을 비롯한 러시아·이라크 등 세계 10여개 국가들이 상당한 수준의 「사이버 전쟁」능력을 개발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10여개국의 정부 또는 대리인들이 정적과 비우호적인 인접국에 대한 공격, 무역정보 수집 및 전면적인 전쟁 준비에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해킹이나 바이러스를 이용한 전기·전자 및 운송·전력분야에 대한 사이버 공격의 효과는 핵무기의 파괴력에 버금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날아가던 비행기가 갑자기 추락하고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핵무기가 발사되는 등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실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커들은 국가기밀이나 기업기밀을 훔쳐오거나 상대측의 컴퓨터 시스템을 교란시켜 막대한 타격을 입힘으로써 해킹을 사이버 전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해커들이 상대국의 국방부 등 컴퓨터시스템에 침투, 방공시스템을 파괴하거나 군사기밀을 훔쳐오던 과거 스파이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사이버 전쟁에 대비한 가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가상훈련의 일환으로 일반 컴퓨터와 모뎀을 이용, 미 태평양함대 정보시스템에 들어가 함대사령관의 이름으로 거짓명령을 하달하자 실제로 작전이 개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미국의 국가컴퓨터안전국(NCSC)이 지난해 520여개 정부기관과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가 전산망을 파괴시키려는 공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이는 지난 97년보다 16%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미국·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사이버 전쟁이라는 미래전에 대비한 전자무기 개발 및 사이버전 부대 창설에 적극 나섬에 따라 국내에서도 이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남한과 북한이 대치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국내 실정을 비추어 볼 때 전세계적으로 빈발하고 있는 사이버 전쟁이 국내에까지 확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사이버전에 대한 기초자료 수집 및 전담부서 조정을 논의하는 등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내에서도 사이버전쟁에 대비한 특별부대 창설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